nk-projects

Monday, August 31, 2009

빨리 보따리 싸시게!

美남북전쟁에서 남군과 북군 전체를 다 합쳐 제일 한심했던 장수의 이름은 조지 B. 멕클렐란이란 나이 젊은 머저리 연방군 사령관이었다. 멕클렐란이 인기가 좋았을 때는 정치가들 군인들이 그를 “The Young Napoleon, 젊은 나폴레옹”이라고 떠받들다가, 이 자가 꼼짝도 않고 전투를 기피하자, 나중에는 “Mac has the slows, 멕클렐란은 굼벵이”란 모욕적 별명으로 매도했다. 본래가 美민주당 소속이었던 멕클렐란은 처음부터 남부 반란군과 싸울 마음이 전혀 없었고, 더구나 흑인노예해방이라면 팔짝팔짝 뛰었다. 내가 왜 깜둥이들 해방戰에 앞장 선단 말인가?

남북전쟁에서 제일 첫 번째 치열한 대전투는 1861년 7월, 버지니아 州 불런(남부名 마나사스)이란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였는데, 양측 전사전상자가 수천명에 달하는 피바다였고, 이 전투에서 어빈 맥다웰 사령관의 연방군은 반란군 스톤월 잭슨에게 참패했다. 이 전투로서 남북은 이 전쟁이 장난 소풍이 아닌 진짜 전쟁이고, 長期 全面戰이 될 거란 것을 깨달았다. 링컨 대통령은 버니지아 州 서부지방 작은 전투에서 몇 번 승리한 조지 멕클렐란을 불러다 연방 포토맥 군단의 사령관직을 맡겼다.

나폴레옹처럼 키가 작았던 멕클렐란을, 연방군 병사들은 좋은 뜻에서, “꼬마 맥 Little Mac”이란 별명을 붙히고 모두들 잘 모시고 잘 따랐다. 그런데 군인들에게 이렇게 인기가 좋았던 꼬마 맥은 군사훈련은 잘 시켜놓고, 이들을 이끌고 전투에 뛰어드는 것은 질색팔색으로 벼라별 핑계를 다 대면서 포토맥 강가에 주저앉아서 꼼짝도 안했다. 링컨이 오죽 답답했으면 꼬마 맥에게, “장군, 장군이 쓰지않을 군대라면 나에게 잠시 빌려주시지요”라고 비꼰 적까지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꼬마 맥 사령관은 결국 링컨 대통령에게 파면 당하고, 1864년 美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링컨에게 참패하고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져 버렸다.

사족이지만, 하필이면 이 꼬마 맥이 필자가 지난 40년간 건축설계 일을 해온 뉴저지 州 출신이어서, 뉴저지 주에 있는 느왁 비행장을 나가려면 이 자의 이름을 붙힌 “멕클렐란 路”를 꼭 옆으로 지나가야 한다. 링컨은 미대선에서 두 번 다 이겼는데, 두 번 다 링컨에게 부표를 던진 주는 뉴저지 주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대통령 하는 짓이 꼬마 맥과 똑 같다. 주적 살인마는 북쪽에서 벼라별 생쇼(핵실험, 미사일 발사, 여기자 납치, 개성공단 직원 억류, 연안호 어부 납치)를 다 부리는데, 우리 굼벵이 맹박 장군은 싸울 생각은 커녕 청와대 안에 앉아서 꼼짝도 안 한다. 굼벵이가 아니라 식물인간처럼 보인다. 굼벵이는 밟으면 꿈틀거리기라도 하지만, 식물인간은 아픈 것도 모르고, 창피한 것도 모르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촛불시위 당하면 아침이슬이 나오고, 역적들이 죽었는데 國民葬 國葬으로 모시고, 북한 빨갱이들이 만나자면 버선 발로 만나주고, 돈에 환장한 여편네가 주적 살인마를 만나 개성 금강산 타령을 하니까, 그 길로 돈 퍼주기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그 뿐인가, 국방차관 놈 시켜서 국방예산이나 깎아 내리고, 국방장관이, 너 왜 그래? 하니까, 사이비 한승수 시켜서 차관도 글렀지만 장관도 글렀다고? 이 봐요, 리명박 가짜 사령관님, 당신은 中道實用도 아니고, 꼬마 맥 사령관처럼 빨리 途中下車 해야만 할 머저리 식물인간이니, 빨리 보따리 싸시지! 당신 믿고 기다리다간 북한주민 해방은 커녕 대한민국이 무너지게 생겼네. 改閣은 무슨 개각? 지금 당장 보따리 싸고 황석영 고은이랑 청계천 거쳐서 4대강 대운하로 곤돌라 뱃놀이나 떠나시게.

2009년 8월 31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Sunday, August 30, 2009

어르신, 편히 잠드소서

어젯 밤 서울에서 이-메일 한 통이 들어왔습니다. 연세가 많이 드신 평범한 서민 노인 한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訃告 이-메일이었습니다. 부고를 받고 이 어른께 너무 송구하고 그리움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사실 이 분은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습니다.

이 분은, 지난 7년여 저와 제일 가깝게 북한인권 일을 함께 해온 동지의 아버님이셨습니다. 아들이 북한인권을 한다고 재산을 날리자, 우리 집안에서 인물이 났다고 기뻐하시던 분입니다. 쓰레기 수거차를 끌고다니시면서 만든 돈으로 아들에게 북한인권 일에 쓰라고 주시던 분입니다. “나 돌볼 생각 말고 북한주민들 살려라!” 文선생이 뉴욕 유엔본부에 와서 북한인권 시위를 한다니까, “가서 살아돌아올 생각 말고, 북한주민들을 구해라!” 격려하시던 분입니다.

2007년 12월, 서울역 앞 광장에서 “김정일에게 학살 당한 3백만 寃魂의 慰靈祭”가 열렸습니다. 3백만 영혼을 상징하는 30개의 관을 광장에 모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모제에 참석하고 3백만 원혼들을 진혼하는데, 관을 잡고 대성통곡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제 돌아가신 이 어른이셨습니다. “부디 이 떡들 잡수시고 편안히 쉬시라!” 강물처럼 눈물을 흘리시면서 5천만 남한백성들을 대신하여 불쌍한 원혼들을 달래셨습니다.

이제는 3백만 원혼들과 함께 계실 어르신, 부디 편안히 잠 드소서.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惡鬼들이 날뛰더라도, 어르신의 넋이 보살피시면 저 불쌍한 북한주민들이 해방될 날이 올 것입니다. 반드시 올 것입니다.

2009년 8월 30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Monday, August 24, 2009

더 큰 일 내기 전에 리명박은 가야 한다

더 큰 일 내기 전에 리명박은 가야 한다

조지 W. 부시가 2003년경부터 갑자기 변절하여 북한인권은 제치고 악의 축 김정일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을 때, 제일 펄펄 뛰면서 W. 부시의 新 대북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매도한 사람은, 딴 사람도 아니고, 바로 W. 부시가 美민주당 좌파 패거리들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美연방국회가 휴회중 편법까지 써가면서 유엔 대사로 발령했던 존 볼턴 씨였다. 북한은 생지옥 Living Hell on Earth라고 내지르고, 뉴욕에 있는 치외법권 유엔건물에서 열 개층을 없애야 유엔이 제 구실을 할 거라고 진실이 담긴 험담으로 유엔을 매도했던 존 볼턴을 유엔 대사로 보냈던 W. 부시였다.

이제는 오래 전 이야기이고, 요즈음 W. 부시는 텍사스에서 심심한지 한국 하회마을이나 찾아다니는데, 존 볼턴 투사는 아직도 좌파 민주당과, 좌파 유엔과, 살인마 김정일과 열심히 붓으로 연설로 싸우고 계시다. 존 볼턴 대사님이 유엔 본부 로비에서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를 열어주겠다고 하셨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엔 대사직에서 쫓겨(?) 나셨다.

존 볼턴 대사는 W. 부시란 개인을 보고 민주주의 인권 반테러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봉하고 김정일이나 사담 후세인같은 테러리스트 살인마들을 미워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유엔 대사직을 맡아서 독재자들 테러리스트들과 싸웠던 것이다. 열심히 싸웠는데, 이전의 主君 조지 W. 부시가 늙기도 전에 치매걸린 사람처럼 우왕좌왕하기 시작하니까, 존 볼턴 대사는 “당신 그럴 수가 있나? 당신 글렀어!” 라고 직설 불화살을 쏘아댔다.

링컨이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Stand with anybody who stands right. Stand with him while he is right, and part with him when he goes wrong. 누구라도 옳은 편에 있는 사람 편을 들어라. 그 사람이 옳은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 사람과 함께 하라. 그러다 그런 사람이 잘못하면 곧 그 사람을 떠나라.” 존 볼턴 대사는 링컨의 遺訓을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천한 분이다.

필자는 관상쟁이가 아니지만, 처음부터 이명박이 싫었다. 물론 이유없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중도실용”이란 슬로건도 싫었고, “냉전 끝났으니 이념타령 하지 말자!”란 뻐꾸기 새소리에도 질렸고, 급기야 “비핵개방 3000포”를 떠들 때에는 저 자에게는 정녕 사기성이 있다고 확신이 가기 시작했다. 도곡동 BBK 비리소문 동영상이 뜨기 시작했을 때에는 정말 정내미가 떨어졌고, 한나라당 경선 과정의 엿장수 식 줄다리기에는 어이가 없었다. 거기에다 이명박의 쪽제비 눈을 바라보면 있던 정도 떨어질만큼 소인배로 보였다. 저 자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큰 일 내지!

이명박이 아니나 다를까, 큰 일을 냈다. 빨갱이들 쇠고기 촛불시위에 아침이슬이나 읊은 것은 약과다. 노무현을 국민장으로 모시더니, 김대중을 국장으로 모시는 큰 일을 냈다. 빨갱이 두 마리를 국장 국민장으로 모시는 자는 빨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빨갱이들을 옆에 두고 있는 대통령은 빨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대중이 그랬었고, 노무현이 그랬었는데, 둘 다 빨갱이였다는 것은 이제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링컨 말씀을 좇아 이제 이명박에서 리명박으로 성을 바꾼 명박이는 버리자. 이명박이 옳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리명박은 버려야 한다. 임기나 끝나게 두고 보다가 버리자고? 김대중 노무현 10년에 나라가 빨갛게 변색했는데도, 빨갱이 리명박을 두고 보자고? 언제까지? 나라가 빨간 피로 흠뻑 젖을 때까지 기다리잔 말인가? 김정일을 제일 미워하는 황장엽 선생은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사전 약속도 없었던 김정일의 직속졸개 김기남 김양건을 즉석에서 만나는 리명박을 믿고 내버려 두잔 말씀들인가?

조지 W. 부시는 石頭 머저리이지만, 리명박은 빨갱이 불도저이다. 빨갱이들 촛불시위에는 아침이슬로 메아리를 보내고, 불덩이 탈북투사 박상학 씨가 김정일 하수인들 앞에서 데모하니까, 남한 보위부 애들 풀어서 박상학 씨를 두들겨 패고 팔을 비틀었다. 그건 아무 것도 모르는 경찰 애들이 한 짓이라고? 그거 다 리명박이가 시켜서 한 짓이다. 反김정일 애국투사들은 두들겨 패고, 촛불 화염병 광란의 빨갱이 폭도들을 두호하는 反대한민국 反인권 反민주주의 독재자가 바로 리명박이다.

더 큰 일 내기 전에 리명박은 가야 한다.

2009년 8월 24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Sunday, August 23, 2009

꽉 막혔나?

노무현이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떨어져 죽었는지, 등떠밀려 떨어졌는지, 아무튼 노무현이 석 달전 죽어서 國民葬을 치루고 어제 김대중의 國葬을 치룰 때까지 또 다시 거의 매일 조국에서 일어나는 악몽들이,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을 절감했다. 이번에는 이 악몽 연속劇을 제작 감독 주연한 자가 김대중도 아니고 노무현도 아니고 정권교체 뻐꾸기 리명박 逆徒였다. 리명박이 어제 김기남과 청와대에서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오늘 아침 보고, 9년 전 김대중과 김정일이 평양에서 얼싸안던 모습이 떠올랐다. 헤어날 수 없는 악몽의 연속극이다.

북한인권 때문에 지난 10년간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과 매일 싸워왔는데, 이제는 리명박 역도와 또 수삼 년 매일 싸우게 생겼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낳고, 김정일은 김대중을 낳고, 김대중은 노무현을 낳고, 노무현은 리명박을 낳고… 한반도 악의 세력은 끈질기기도 하다. 리명박은 또 누구를 낳을까? 김정일 김대중보다도 더 지독한 악마를 낳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잣대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아닙니다, 여러분, 싸우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공짜 점심 한 그릇도 없는 것이 이 세상인데, 자유와 인권과 나라가 싸우지도 않고 지켜지나? 절대로 그럴 리 없다.

사방이 꽉 막혔다. NO WAY OUT! 어디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인다. 답답해서 조선 동아일보를 찍어보아도, 온통 빨갱이들같은 소리만 실고 있다. 민족 화해와 통합의 선구자 김대중 슨상님? 조선일보는 조선중앙통신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동아일보도 조금은 낫지만 오십보 백보이다. 미주에 40년 살면서 좌파 왜곡紙 뉴욕타임스와 타임스 紙 구독을 취소했었는데,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이제 눈뜨고 읽을 수없는 빨갱이들 신문이 되었다. 조선중앙통신이나 조선일보 기사나 논조가 다 비슷한데, 조선일보 보아서 무얼 하나? 혈압만 올라갈 뿐이다.

150년 전 미국에서 링컨이란 위대한 해결사가 나오기 전, 수많은 투사들이 있었다. 존 브라운이란 투사는 남부 노예주들을 상대로 캔자스에서 총칼로 싸우다가 교수대에서 죽으면서 부르짖었다. “이제 이 땅에서는 피가 강물처럼 흐르기 전에는 우리들의 죄악(흑인노예제도)을 씼을 수 없게 되었다!” 엘라이자 러브조이란 노예해방운동가는 일리노이 주에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신문을 찍어 돌리다가 윤전기와 함께 노예주 세력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 이 분들은 모두 노예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이 분들이 닦아놓은 길 때문에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일은 계속해서 해야 한다. 김정일로부터 북한사람들 구하고, 김대중 노무현 리명박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는 일은, 링컨이 美연방을 살리고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킨 일과 質的으로나 量的으로나 根本的으로 똑같은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링컨은 나온다. 천지가 깜깜했던 임진왜란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보내주셨던 하느님께서, 임진왜란보다 더 한 피바다가 보이는데, 韓민족을 버리지는 않으실 것이다. 400년 전 조선에도 리명박같은 임금 선조도 있었고, 빨갱이 박지원 임동원 정동영같은 원균이도 있었지만, 하느님은 이순신을 보내 한민족을 구하셨다. 아무리 지금 빠져나갈 길이 안 보여도, 우리는 길을 닦아야 한다. 충무공이 다시 오시든, 링컨이 다시 오시든, 우리는 그것을 믿고 길을 닦아야 한다.

2009년 8월 23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Saturday, August 22, 2009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나?

빨갱이 악마 두 김가가 2000년 6월 평양에서 만났 을 때, 그들 뒤에서 손벽을 치며 좋아라 하던 머저리가 있다. 바로 빨갱이 사깃꾼 시인 高銀이란 미운 놈이다. 양심도 없고 재주도 없는 빨갱이가 그적거린, 당신은 우리입니다!란 어처구니 없는 추모시가 내일 김대중의 국장에서 추모곡으로 불려진다 한다. 김대중이가 왜 우리냐? 너희들이지! 저런 사깃꾼도 노벨문학상을 바란다고 들었다. 하기사 제 상전 김대중이 돈주고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니, 고은이도 돈주고 노벨문학상을 받을지 모르겠다.

히틀러 나치 지옥에서도 사이비 문인들, 음악가들, 건축가들이 살인마 히틀러를 칭송하기에 급급했었다. 나치 독일에서 알베르트 슈페어란 사깃꾼 건축쟁이는 히틀러에 환장해서 히틀러가 하라는대로 하다가, 나치가 무너진 후 콩밥을 20년간 먹었다. 김정일 김대중과 놀아나는 한국의 문인들, 음악가들, 건축가들, 모두 언젠가는 쥐구멍을 찾거나 콩밥 먹을 날이 올 것이다.

김대중 빨갱이들이 남한에서 제일 먼저 공들인 것이 문화계 교육계 언론계를 선제공격 점령하여 우리나라 철부지 어린애들을 세뇌교육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남한의 빨갱이 문학 문화를 많이 읽고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빨갱이 황석영의 소설도 읽은 적이 있고, 빨갱이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제1권을 읽다가 내동댕이 쳐버린 일도 있다. 남한에서는 그런 빨갱이 소설가의 태백산맥 기념관이 올라가고, 아침이슬 중도실용 리명박은 그런 빨갱이 소설가를 모시고 외국 나들이를 하는 세상이다.

김대중을 기왕 國葬으로 모시려면, 김대중의 진짜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國歌인,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을 추모곡으로 합창해주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 김대중의 상전이자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 장군님의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을 아예 평양에 갔던 뉴욕 필하모닉의 로렌 마젤까지 초청해서 연주해주는 것이 어떨까? 빨갱이 國葬은 철저히 빨갱이들 답게 해라!

빨갱이 떠꺼머리 중 가짜시인 고은은 추모시 제목을 아예, “김대중 동무, 당신은 우리 혁명동지입네다!”라고 바꾸시지? 이제 남한에서는 빨갱이란 타이틀이 욕도 아닌 세상인데, 자네도 아주 내놓고 “나는 김일성 대원수의 혁명戰士다!”라고 선언하시지 그랴!

입으로는 욕을 하지만 내 속은 시꺼멓다.
저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나?

2009년 8월 22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리명박 역도는 듣거라!

빨갱이 조선중앙통신 사이트에를 들어가보면 단 한 번도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을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항상 逆徒 리명박이든지, 리명박 패당이다. 놈들이 우리 대통령을 저토록 비하할 수 있나, 오래 전에는 잠시 분개한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놈들이 붙혀놓은 리명박 패당, 리명박 역도가 맞는 칭호란 것을 알았다. 비통한 심정이다.

리명박 패당 리명박 역도가 빨갱이 김기남 김양건 역도들을 내일 청와대에서 만나시겠단다. 김기남 김양건 역도들이 김대중 역도가 죽은 것을 핑계로 김정일花를 앞 세우고 의기양양 보무당당하게 남조선으로 내려올 때, 리명박 역도와의 회동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역도들이 만나서 김대중 역도의 죽음을 함께 슬퍼할 리는 없다. 미친 여편네 현정은이 올라가서 장군님에게 약속한 돈보따리 액수를 리명박 역도에게 확인할 것은 물론, 앞으로 400억불을 언제 어떤 식으로 조공할 것인지도 확인할 것이다.

사실 일개 재미교포 남 아무개도 리명박 역도를 두세 번 만날 뻔한 적이 있었다. 리명박 역도가 미국에 왔을 때, [북한자유연합]에서 면담 신청을 들여 밀었었다.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북한인권좀 챙겨 주세요! 리명박 역도는 김대중과 절친했던 미국 빨갱이들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도널드 그레그와는 만날 시간이 있었어도, 북한인권단체 면담신청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작년 10월, 수잔 숄티 여사의 서울평화상 수상에도 리명박 역도와의 면담을 신청한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리명박 역도는 북한인권이라면, 소리만 들어도 [치를 떠는] 중도실용이라, 만나줄 리가 없었다. 돌아보면 하나님이 미리 알아서 리명박 역도 따위는 만나지 말라고 하신 것 같다.

그런 리명박 역도가 문상 핑계로 조공 확인하러 온 빨갱이 김기남 김양건은 하루 통첩에 만사 제폐하고 청와대에서 내일 만나주시겠다 한다. 빨갱이 조선중앙통신에서는 이제 리명박을 역도라고 부르면 안 된다. 리명박은 대한민국에나 역도이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앞으로 영웅 칭호을 수여할 충신이다. 역도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내가 미국에서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 매일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리명박 역도 때문에 속이 뒤집히고 잠이 안 와서,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칠 지도 모른다는 自衛 본능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다. 온세상 빨갱이들과 온세상 뻐꾸기들이 아무리 리명박을 중도실용이라고 僞裝 포장을 해도, 나는 리명박 역도가 김대중 노무현 역도 패당의 망국 햇볕정책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작살내려는 진짜 역도 패당 사깃꾼이란 것을 알고있다.

Come what may! If God wills, we will have to go through this.
올테면 와라!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이 수난을 겪어야 한다.

다시 링컨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하자면,

Yet, if God wills that it continue, until all the wealth piled by the bond-man's two hundred and fifty years of unrequited toil shall be sunk, and until every drop of blood drawn with the lash, shall be paid by another drawn with the sword, as was said three thousand years ago, so still it must be said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더 계속하라고 시키신다면, 지난 250년간 죽지 못해 할 수없이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일한 노예들 노동으로 축적한 富가 전부 사라지고, 채찍에 맞아서 흘린 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다 이제는 칼로 인해 그만큼 피를 흘리기 전에는 이 전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면, 3천년 전에 하신 말씀을 우리는 다시 상기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심판은 全的으로 眞實되고 正義로우시다는 것을!”

노무현과 김대중을 아무리 국민장 國葬으로 보내도, 저들이 갈 곳은 지옥밖에 없고, 김정일 살인마와 놀아나는 이명박 장로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全的으로 眞實되고 正義로우시니까!”

2009년 8월 22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Friday, August 21, 2009

뻐꾸기 이명박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살려내자!

뻐꾸기 이명박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살려내자!


뉴욕 만하탄 시내 韓人商街 한 복판에 조그만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는 남북전쟁 당시 뉴욕 트리뷴이란 막강했던 신문의 편집장을 지낸 호러스 그릴리란 사람의 동상이 앉아있다. 필자는 뉴욕에 들리면 한인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 공원에 앉아서 그릴리 동상을 쳐다보며 링컨을 회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1862년 8월 22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당시 그토록 막강했던 뉴욕 트리뷴 紙의 호러스 그릴리 편집장에게, 먼 후일 역사에 남을 유명한 공개서한 답장을 보냈다. 美남북전쟁이 한창이고 링컨이 안팎으로 곤경을 당하고 있을 때, 먹물쟁이 그릴리가 뉴욕 트리뷴 지 사설에서, “링컨은 나라 살릴 방향도 없고 정책도 없다!”라고 강타 질타했었다.

이러한 그릴리의 공개적 공격에 대한 링컨의 공개답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는 美연방을 구하는 것이 至上목표이다. 미연방을 구하기 위하여 노예제도를 전폐해야 한다면 난 그리 하겠다. 노예제도를 그대로 두어야 연방을 살릴 수 있다면 노예제도를 있는 그대로 두겠다. 노예들을 반만 해방시키고, 반은 그대로 두어야 연방을 살릴 수 있다면 난 그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내 개인적 평생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

링컨에게는 이렇게 미합중국을 구하는 것이 지상목표였다. 미연방을 구해야 노예해방도 있을 수 있고, 미연방을 구해야 지구에서 당시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실행하던 지구상 마지막 희망인 나라를, 미국인뿐만이 아니라 세계만방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믿었다. 링컨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당시 3천만 미국인구의 2%였던 60만 장정들을 희생시킬 결심과 각오와 “깡”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죽자! 우리가 죽어야 나라를 구하고, 노예들도 해방시킬 수 있고, 세계만방에서 최고로 강하고, 최고로 부자이고, 최고로 자유인권 민주적인 미합중국을 만들 수 있다!

한반도 사세가 정말 급해졌다. 중도실용 빨갱이 이명박이 빨갱이 大盜 김대중을 國葬으로 모신다면서, 북한 빨갱이들 (김정일花 김기남), 미국 빨갱이들 (아리랑 올브라이트), 중국 빨갱이들 (당가선 唐家璇)이 몽땅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 김정일이 핵폭탄을 안 써도 대한민국이 안으로 폭삭 망하게 생겼다. 아니, 거의 이미 빨갛게 망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지상목표가 되어야 한다. 북한인권도 대한민국 구하고 나서의 일이다. 대한민국이 없어지면 북한인권이란 희망도 사라진다.

링컨과 미국민들은 미연방을 구하고, 후손들을 위한 진짜 자유인권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하여 인구 2%를 희생시킬 의지와 각오와 “깡”이 있었다. 링컨은 동양의 선배님 충무공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구한 후, 흉탄에 쓰러졌다.

한국민들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따라 링컨과 미국민들처럼 인구 2%를 희생할 “깡”이 있는가? 인구 4800만의 2%이면 1백만명이다. 韓민족은, 대한민국을 구하고 2천만 김정일의 노예들을 구하기 위하여 1백만명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미 6.25 동란으로 3백만명 죽이고, 90년대 대기근으로 3백만명 죽여서, 한민족 백성들을 6백만명 학살했다. 전쟁으로 학살하고 밥을 굶겨서 죽였다.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때문에 또 3백만명이, 또 6백만명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우선 대한민국을 살리자! 이명박을 청와대에서 내쫓아야 대한민국이 살아난다면 이명박을 당장 내쫓자! 4.19 식으로 내쫓든지, 5.16 식으로 내쫓든지, 빨리 내쫓을수록 나라 살아날 희망이나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많은 우익 애국자들이, 이명박 아니면 무슨 代案이 있냐?고, 이명박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주장하던 필자를 타박했었다. 그래서 이명박으로 정권교체가 되었나? 대한민국이 살아나나? 쪽제비 눈깔 이명박 1년 반만에 김대중 國葬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國葬 치루게 생겼다.

우선 뻐꾸기 이명박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살려내자!

2009년 8월 21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김대중은 지옥으로 직행한다

김대중은 지옥으로 직행한다

김대중은 지금 지옥불에서 타고 있다.
이명박과 김정일이 아무리 김대중의 명복을 빌어도
김대중은 지옥불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한 빨갱이들이 아무리 빌어도 김대중은 지옥불로 직행할 것이다.
남한국민들 5천만이 김대중을 國葬으로 보내도 김대중은 지옥으로 간다.

하느님은 正義로우시다.
김대중을 받아들이실 수 없다.
2천만 북한주민들의 아우성 곡성에 김대중을 받아들이실 수가 없다.
요덕수용소의 지옥에서 들리는 비명에 김대중을 받아주실 수가 없다.
김정일 김대중 때문에 굶어죽어 허공을 헤메는 3백만 餓死 怨魂들 때문에 하느님은 김대중을 받아주실 수가 없다.

링컨 대통령이 그랬다: 하느님의 심판은 正義로우시다.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지금 이명박이 미치고 5천만이 미쳤어도
하느님의 正義를 가로 막지는 못한다.
김대중은 지옥불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대중이 극락 천당에 갔으면, 나는 지옥으로 갈 것이다.

2009년 8월 21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충무공 이순신 장군 평전(19) - 최성재

임금에게 조총(鳥銃)을 만들어 바친 이순신


1593년 8월 이순신 장군은 1년 3개월의 고심 끝에 마침내 조총을 능가하는 개인화기를 제작하여 임금에게 바치지만...
최성재

1593년 8월, 임진왜란이 소강(小康) 상태에 들어갈 즈음에 이순신 장군은 신분을 뛰어넘는 인재 발탁으로 마침내 조총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1592년 5월에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첫 전투를 벌였으니까, 이때부터 따지면 약 1년 3개월 만이다. 동양 삼국의 전쟁 양상과 세계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꾼 조총을 다름 아닌 일선 지휘관이, 전투하는 것만도 입에 단내가 날 조선의 일선 지휘관이 국산화했다. 조정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여 이순신 장군은 1인 10역을 담당해서 적의 생명선인 남해와 조선의 젖줄인 전라도 곡창지대를 홀로 지키면서도 노심초사 적의 최대 강점인 조총을 늘 곁에 두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한편, 비상한 재주를 지닌 군관과 대장장이와 관내 또는 다른 지방에서 피난 온 종들을 독려하고 격려하여 조총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여 한두 자루도 아닌 다섯 자루를 임금에게 바친다. 이제 이것을 대량공급하기만 하면 왜적의 숨소리만 들려도 혼비백산 달아나던 조선군도 명나라 군대의 도움도 받을 것도 없이 왜적을 모조리 현해탄에 수장(水葬)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암군(暗君) 선조와 말싸움 세계1위 조정 대신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말았다. 그저 하늘 군대가 철천지원수 왜적을 여반장(如反掌)으로 소탕해 주기만을 바랐다.

조총은 개인 화기(火器)로서 이것만 가지면 일대 일로는 상대도 안 되던 천하디 천한 병졸들이 천하무적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있을 수 없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수십 년 무예를 익힌 무사나 바람같이 내닫아 대군을 허수아비인 양 짓밟던 기마병도 3열 횡대로 늘어서서 한 줄씩 차례로 화약에 불붙일 시간을 확보한 병졸 앞에만 서면, 의지와 기백과 애국심과는 전혀 무관하게 짚단처럼 쓰러졌다. 축성술, 기병전, 백병전, 정보전, 합종연횡책 등 전쟁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던 일본은 전국시대 100년 동안 크고 작은 100여 명의 대명(大名)들이 각 지방을 호령했지만 누구도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여 영구평화를 가져올 통일은 요원하기만 했다. 바로 이때 구주 앞바다에 표류한 포르투갈 상인이 종자도(種子島)에 호위무사 대신 화승총(火繩銃) 곧 조총을 들고 왔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 인재를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새로운 세상을 열 물건을 알아보기도 힘들다. 이런 면에서 일본의 직전신장(織田信長 오다 노부나가)은 탁월한 위인이었다. 그는 신분도 천하고 풍채도 보잘것없는 미래의 영웅 풍신수길을 알아보았고, 어떤 대군도 물리칠 수 있는 조총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 조총을 그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국대명 사이에서 조무래기에 지나지 않던 종자도의 우두머리 종자도 혜시(種子島惠時 다네가시마 마사토키)였다. 1543년 그는 포르투갈 상인의 천하무적 호위무사 조총을 한눈에 알아봤다. 사격 시범 때 사람들은 그 정확성과 사정거리와 파괴력과 소리에 너무 놀라 눈이 한 자나 튀어나오고 일제히 엉덩방아를 찧어 맨땅이 푹푹 꺼졌다고 한다. 일본에서 온 외래어 무대뽀는 원래 무철포(無鐵砲)의 일본음이다. 그들은 조총을 철포라 했고, 싸움에 임하여 철포도 없이 나서는 자의 만용을 비웃기 위해 이 말을 썼다. 하여간 혜시는 포르투갈 상인이 절대 거부할 수 없도록 오늘날 돈으로 치면 물경 1억 엔(약 10억 원)을 주고 전쟁의 보배를 샀다. 포르투갈 상인은 너무 비싸게 받은 것이 미안했던지 그 아들에게 한 자루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화염조선, 박재광)

혜시는 즉시 최고의 대장장이에게 조총을 주면서 그것과 똑같은 것을 제작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최고의 일본도를 벼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일본 대장장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때 대장장이의 방년 16세 딸이 굳은 결심을 아름다운 눈에 담고 조용히 일어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갔다. 일본의 논개였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상인에게 생명처럼 귀한 처녀의 몸을 바쳐 조총 제작의 비법을 알아냈다. 일본의 역사를 바꾼 당대 최고 기술자 팔판금병위(八板金兵衛 야이타 킨베)의 딸 약협(若狹 와카사)은 오늘도 ‘약협충효비’로 방명을 청사에 길이 남기고 있다. 그녀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500년 후 맥아더가 일본에 진주하자, 일본의 딸과 부인들은 다투어 구역질나는 미군의 품에 안겨 점령군이 패전국을 유린하지 않고 도리어 어제의 적국이 다시 떨치고 일어나게끔 열과 성을 다하도록 녹여 버렸다.

일본의 논개가 양이(洋夷)의 품에 몸을 던진 지 약 30년, 직전신장은 1575년 비밀병기 조총 3천 자루로 그렇고 그런 작은 영주에서 일약 천하를 호령하는 대명(大名 다이묘)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당시에 3만 정예병, 10만 대군과 맞먹었다. 임진왜란에 침략에 동원된 왜적은 최대 16만 명이었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일부 군 편성을 토대로 살펴보면, 최일선의 조총부대는 전체의 약 30%였던 것 같다. 임진왜란에 동원된 조총이 약 5만 정이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수군을 제외하면 조총은커녕 구부러지거나 부러지거나 녹슨 활, 창, 칼까지 몽땅 합해야 5만 개도 없었을 조선은 그들에게 숫제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부산에서 평양까지 하늘의 가호와 조상의 음덕만 믿고 막무가내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육지의 조선은 임란 7년 동안 제대로 훈련을 갖춘 정예병이 1만 명도 넘지 못했다.

1593년의 벽제전투에서 알 수 있듯이 기마병의 속도와 파괴력을 장기로 한 명나라의 이여송은 조총과 긴 창으로 무장한 패잔병한테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로써 이여송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 후 그는 두 번 다시 일본군과 싸우지 않았다. 그것은 1575년의 장조(長"023나가시노) 전투가 조선에서 그대로 재현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전국시대 최대의 영웅이자 경도(京都 교토) 입성을 눈앞에 두었던 무전신현(武田信玄 다케다 신겐)이 죽자, 그 영토와 군대와 전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의 아들 무전승뢰(武田勝賴 다케다 가스요리)는 경도 입성의 최대 방해자 직전신장과 1575년 장조에서 숙명의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무전 가문의 최대 자랑거리이자 당시까지 천하무적이었던 기마대가 3천 조총부대에 궤멸되는 것으로 허무하게 끝났다. 그것은 전국시대가 이제 곧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리는 장엄한 효시였다.

직전신장이 조총을 대규모로 동원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똑같은 전국(戰國)대명의 일원이었던 본원사(本願寺 혼간사)의 3만 승병(僧兵)이었다. 1570년 승승장구하던 직전신장은 본원사의 싸움에서 대패했다. 3천 자루의 조총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지옥의 문턱까지 쫓겨났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조총의 위력과 의미를 깨달은 직전신장은 그 후 5년 만에 3천 정의 비밀병기를 마련하여 천하포무(天下布武)의 뜻을 손에 잡힐 듯 현실화할 수 있었다. 이제 아무도 그를 허풍선이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조총이 이순신 장군의 관심과 지시와 독려 하에 마침내 적군에게 돈 한 푼 안 바치고 꽃다운 처녀의 인신공양도 없이 군관과 대장장이와 종들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연구개발 끝에 드디어 오히려 일본의 조총을 능가하는 조선식 조총을 개발해서 시제품을 다섯 자루나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언제나 모든 공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이순신 장군은 이번에도 조총 연구개발 담당자의 이름을 일일이 밝히며 그들을 크게 칭찬하고 상을 주고 그들의 힘을 빌려 조총을 대량 생산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대량생산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물적 인적 지원이 필요하다. 오늘날로 말하면 거대한 최첨단 군수산업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명나라 군대에게 화약 제조법을 알려 달라고 애원하고, 조선사람 중에 이를 알아 오는 사람은 바로 당상관의 벼슬을 주겠다고 했고, 심지어 독화살 만드는 법도 제발 알려 달라고 머리를 조아렸지만, 하늘나라 군대는 끝내 알려 주지 않았다.

화약제조법도 이순신 장군한테 물으면 바로 답이 나왔고, 그까짓 독화살 만드는 법도 이순신 장군한테 물으면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해 주었을 것이고, 이제 최일선의 지휘관이 하늘나라 군대마저 벌벌 떨게 만들던 조총의 제조법을 터득하여 대량생산의 길을 열고 상세히 보고서를 올렸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자가 없었다. 임금과 조정대신들이 어떤 조치를 취했다는 말이 전혀 없다. 그들은 그냥 천수답 농민처럼 전쟁의 신으로 떠받들던 하늘(명나라)만 바라봤다.

“척계광(戚繼光)이 지은 《기효신서(紀效新書)》를 몇 부 사오게 하라. 그러나 이 책은 자세한 것과 소략한 것이 있으니 되도록이면 왕세정(王世貞)이 서문(序文)을 쓴 것으로 사오게 하라. 또 중국에는 바닷물을 졸여서 염초(焰硝)를 만드는 법이 있다는데, 그 일행(一行)에게 효유하여 그 법을 배워 가지고 오는 자에게는 크게 포상한다고 하라. 사인(士人)일 경우는 당상(堂上)을 시켜줄 것이다. 이 뜻을 동지사(冬至使) 허진(許晉)에게도 파발마를 보내어 하서하도록 하라.” (선조실록 1593/9/25)

○傳曰: “戚繼光所撰《紀効新書》數件, 貿得而來。 但此書有詳略, 須得王世貞作序之書貿來。 且中國有以海水煮取焰硝之法。 爾其曉諭一行, 有能傳習其法者, 當大加褒賞。 士人則當作堂上矣。 此意冬至使許晋處, 發馬下書。”

“유 제독의 군중에 화살에 바르는 독약(毒藥)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군영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활을 잘 쏘니 만약 이 독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전수해 익힌다면 적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에 들으니, 그 재료가 모두 남원에서 생산되는데 제독이 제조하면서 비밀로 하였다고 한다. ‘경은 은밀히 그 일을 잘 아는 역관(譯官)과 협력하여 천금(千金)을 아끼지 말고 그 방법을 전수해 익히도록 하라. 만약 전수하여 익히기만 하면 역관에게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다.’라고 접반사에게 은밀히 전하라.”(선조실록 1598/7/5)

○傳于政院曰: “劉提督軍中, 有傅矢毒藥。 此他營所無也。 我國人善射。 若傳習此藥, 其有益於禦賊大矣。 前聞其材料, 皆産於南原, 提督劑造而秘之云。 ‘卿宜密與解事譯官協心, 不惜千金, 傳習其方。 若能傳習, 譯官當爲重賞矣。’ 密言于接伴使。”

무기만 있다고 강한 군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산을 넘고 내를 건너고 바다를 헤집는 훈련을 쌓았더라도, 애국심이 하늘에 맞닿더라도! 무기가 시원찮으면, [정무문]의 천하무적 주먹 이소룡이 일본군의 탄막 사격에 벌집이 되는 것처럼 만사도루묵이다. 김정일이 핵무기 하나로 세계 8위권 한국의 군사력과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자랑하는 한국, 아울러 압도적 세계1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여전히 보유한 미국을 각각 공포에 몰아넣고 답답하게 만드는 것처럼 군대에게 무기는 힘의 원천이다. 훈련과 보급은 그 다음 이야기이다. 람보 한 명이면 돌칼과 죽창을 번쩍이며 기세등등 질서정연하게 오와 열을 갖추고 다가서는 10만 대군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

노태우 정부의 민족주의에 의해 순진하게 철수한 전술 핵무기를 다시 배치하고, 한미연합사 해체를 무기한 연기하고, 김정일의 치명적 약점인 북한인권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정식으로 거론하면, 옛 소련의 핵무기에 비하면 고철 수준인 김정일의 핵무기는 매미 한 마리 놀라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명박 정부는 400억 달러의 400분의 1도 안 쓰고 자유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는 6.25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군의 화력은 242대의 탱크와 552문의 곡사포를 앞세운 북괴군에게 이리떼에게 쫓기는 양떼처럼 흩어졌다. 그나마 155mm는 한 문도 없었고 국군 전체가 보유한 곡사포 105mm 91문도 김일성과 스탈린과 모택동의 기습작전에 말려들어 한강 이북에 고스란히 남기고 도망가는 바람에 말 그대로 국군은 미군이 올 때까지 오로지 애국심과 맨주먹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들의 화력도 국군에 비하면 월등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기도 없고 훈련도 안 된 국군을 기가 막히게 골라서 그것도 사단과 사단 사이를 집요하게 공략했던 것이다. 이런 북괴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워 밀리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군대가 백선엽 군대였는데, 그가 차례로 지휘한 1사단, 1군단, 2군단은 다부동 전투 이래 항상 미군의 막강한 화력 지원을 받았다. 평양으로 달려갈 때는 M-26 일명 패튼 전차도 20대나 지원받았다.

마침내 국군은 꿈에도 소원을 이뤘다. 1952년 4월 미군과 대등한 화력을 갖춘 2군단이 창설된 것이다. 군단포병은 미군의 105mm 1개 대대 18문, 155mm 2개 대대 36문의 화력에 더하여 노재현 대령 이하 특별히 훈련받은 국군의 155mm 4개 대대 72문을 갖췄다. 그리하여 2군단은 중부전선의 일부를 독자적으로 담당했지만, 중공군은 감히 까불지 못했다. 까불다가 도리어 혼비백산했다. (군과 나, 백선엽)

중원을 통일한 모택동도 더 이상 동쪽 끝자락 손바닥만한 나라의 수도를 넘볼 수 없었다.

1593년 8월 너무도 기뻤던 나머지 평소와는 달리 점화 장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순신 장군은 서둘러 임금한테 장계(狀啓)를 먼저 보내고, 그 해 9월 14일에 정철총통(正鐵銃筒) 곧 강철로 만든 조총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먼저 난중일기를 살펴본다.

맑음. 정철총통은 전쟁에 가장 긴요한 것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만드는 법을 잘 알지 못하였다. 이제야 온갖 연구를 거듭하여 조총을 만들어 내니, 왜의 총보다도 나았다. 명나라 사람이 진중에 와서 시험사격을 살펴보고는 잘 되었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다. 이미 그 비법을 알았으니, 도내에서 같은 모양으로 넉넉히 만들어내도록 순찰사와 병사에게 견본을 보내고, 공문을 돌려서 알게 했다. (난중일기, 1593/9/14)

晴 正鐵銃筒 最關於戰用 我國之人 未詳其造作妙法 今者百爾思得 造出鳥筒則最妙於倭筒 唐人到陣試放 無不稱善焉 已得其妙 道內一樣優造事 見樣輸送 巡察使 兵使處 移牒知委

임금의 대답이 없자, 이순신 장군은 도내에 널리 비법을 알려 주고 보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후 기록에 별다른 게 없음을 미루어 보아, 광해군 대에 이르러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조선식 조총을 만든 듯하다.

다음은 봉진화포장(封進火砲狀) 전문이다.

삼가 (물건) 올려 보내는 일로 아뢰나이다. 신이 여러 번 큰 전쟁을 겪어 왜인의 조총을 얻은 것이 많사온데, 항상 눈앞에 두고 그 묘한 이치를 시험해 보았더니, 그것은 몸체(총신)가 길므로 총 구멍이 깊고 또 깊기 때문에 기운이 세어 맞기만 하면 부서지는데, 우리나라 승자(勝字: 승자총통)나 쌍혈(雙穴) 등은 총통이 얕아서 그 힘이 왜의 총통만 못하므로 매양 조총을 만들고자 하였삽던 바, 신의 군관 훈련주부 정사준이 비법을 알아내어 대장장이 낙안 수군 이필종, 순천 사노(私奴) 안성, 피난민 김해 절종[寺奴] 동지, 거제 절종 언복 등을 데리고 정철(正鐵)을 두들겨 만들었는데, 그 체제도 잘 되었고 총알 나가는 힘도 조총과 똑같사옵니다. 그 구멍에 불을 붙이는 장치는 좀 다른 것 같으나 몇 날 안으로 완성할 것이옵니다. 또한 작업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아서, 수군 소속 각 고을과 포구에서 우선 같은 모양으로 만들게 하는 것 외에 한 자루는 전 순찰사 권율에게 보내어 각 고을에서도 일제히 제조하도록 하셨사옵니다.

오늘날 적을 제어하는 무기는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삽기로 정철로 만든 조총 5자루를 봉하여 올려 보내오니, 엎드려 원컨대 조정에서도 각도와 각 고을에 명령하여 모두 다 만들게 하시기 바라오며, 감독해 만든 군관 정사준과 대장장이 이필종에선 각별히 상을 내리시와 그들이 감격하여 열심히 일하게 하옵소서. 그러면 모두든 서로 다투어 본떠서 만들어 내도록 하심이 좋을까 하옵니다. (1593/8)

謹啓爲上送事 臣累經大戰 倭人鳥銃 所得優多爲白乎等用良 常伴目前 驗其妙理 則以體長之故 其穴深邃 深邃之故 炮氣猛烈 觸之者必碎 而我國勝字雙穴等銃筒段 體短穴淺 其猛不如倭筒 其聲不雄乙仍于 同鳥銃乙 每欲制造爲白如乎 臣矣軍官訓鍊主簿鄭思竣亦 思得妙法 治匠樂安水軍李必從 順天私奴安成 避亂營居金海寺奴同之 巨濟寺奴彦福等率良㫆正鐵以打造爲白乎亦中 體制甚工 炮丸之烈 一如鳥銃 其線穴揷火之具 雖似少異爲白良置 數日內畢造 功役赤不甚難 舟師各官浦良中 爲先一樣造作亦爲白乎㫆一柄段 前巡察使權慄處輸送 使各官一樣制造亦爲白有在果 當今禦敵之備 莫過於此乙仍于 同正鐵鳥銃五柄乙 監封上送爲白去乎 朝廷以各道各官 竝令制造爲白乎矣 監造軍官鄭思竣及同冶匠李必從等乙良 各別論賞 使之感動興起 爭相效制爲白乎去 妄料爲白臥乎事是良厼謹具啓 聞 萬曆二十一年八月 日 節度使臣李

이 글에서 보듯이 이순신 장군은 총포에 대해서 해박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었다. 조선 수군도 개인화기로 승자총통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일본의 조총에 비해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이유를 핵심을 찔러 간명하게 설명한다. 총신의 길이가 조총이 더 길고 총구도 깊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로 위의 글은 장계초본으로 충무공전서에 실린 것과는 달리 용언의 어미와 체언 다음의 조사에 이두(吏讀)를 많이 사용하였다. 두 가지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한다. 임금과 조정대신이 무식하여 순 한문체는 잘 읽지 못할까 봐, 또는 경어체를 써서 존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한다. 난중일기에는 이런 이두는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한문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농담도 않고 잘 웃지도 않았다고 했는데, 가끔 두고두고 웃음을 참지 못할 해학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조총에 관한 것이다.

이홍명, 임희진이 찾아왔다. 대나무 총통을 만들어 왔기에 시험 삼아 쏘아 보니, 소리는 났지만, 별로 쓸모가 없었다. 우스웠다. (난중일기 1594/2/17)

李弘明 任希璡來 竹銃筒造來 試放則似有出聲 而別無所用 可笑

이미 그보다 6개월 전에 조총을 능가하는 총통을 만든 바 있는 이순신 장군에게 쇠도 아닌 대나무로 총을 만들었다고 자랑스레 들고 온 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말도 안 되므로 그 자리에서 혼을 내어 쫓아버릴 수도 있지만, 어디 한 번 쏘아 보라고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만 요란했지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 이순신 장군은 표적을 정해 주고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고 세게 가격하는가를 직접 확인하게 했을 것이다. 머리를 긁적거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09. 8. 19.) 나로호 발사를 앞두고

Wednesday, August 19, 2009

도무지 어떻게들 견디십니까?

바다 건너 멀리 사는 내가 이렇게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 광란의 연속을 한국이란 나라에 사시는 분들은 어떻게 견디십니까? 마누라 자식들 다 동원해서 돈 해처먹고 살아 생전 매일 깽판부리면서 헤-헤- 거리던 노무현이 죽으니까 國民葬으로 모시고, 김정일과 놀아나서 조국을 배반하고 나라 팔아 먹으려던 사깃꾼 역적 김대중이 죽으니까, 국민장도 아니고 아예 國葬이라? 도무지 어떻게들 견디십니까?

이명박이는 최소한 거짓말 한 적은 없습니다. 난 중도실용이니, 냉전 이념 따위는 필요 없이요! [극우보수]들 날 좀 내버려 두시라요! 대선 전부터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들으라고, 전라도 사람들 들으라고, 사방팔방에 메가폰 들고 나불댄 뻐꾸기가 이명박입니다. 서울시장 시절. 김정일이 받아만 주면 평양 리모델링 값으로 200억원을 상납하겠다고 공개선언했던 [노가다]가 이명박입니다. 대통령이 되더니 간덩이가 더 부어서, 아예 400억불로 상납금을 더 올려 부르는 자가 이명박입니다.

그런 이명박이 빨갱이 김대중을 국장으로 모시겠다는데 왜 난리들이십니까?

옛날에는 남산에 올라가서 돌맹이를 던지면 김가나 이가 머리에 떨어진다 했었는데, 요즈음에는 남산에 올라가서 돌맹이를 던지면 백발백중 빨갱이 머리에 떨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놈의 돌맹이가 청와대에 떨어져도 빨갱이 머리에 떨어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떨어져도 빨갱이 머리에 떨어질 것이고, 서울 한복판 조선일보 사옥에 떨어져도 빨갱이 머리를 피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빨갱이들이 우글거리는 남한에서 빨갱이 왕초 김대중을 국장으로 모시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늘 재미 애국우국교포 선배님 한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남 선생, 이 걸 어떻게 해야 하나! 김대중에게 국장이라니! 저것도 조국이라고 계속 싸워야 하나? 차라리 잊는 것이 낫겠네!

선생님, 버릴 수가 없으니 제 오장육부가 뒤집어 지지요! 조국과 부모를 어떻게 버립니까! 김동길 선생님이 자주 낭송하시던 포은 정몽주 선생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조국과 부모는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조국을 버린단 말입니까? 북한에서 굶어죽는 2천만 내 형제들을 어떻게 버린단 말입니까? 빨갱이들에게 세뇌를 당했어도 내 동포 내 형제 5천만을 어떻게 버린단 말입니까? 차라리 이 몸이 일백번 죽는 것이 낫지, 어떻게 버린단 말입니까?

개같은 세상에서 개같은 대통령이 개보다 못했던 개대중을 개國葬으로 모신다. 도무지 어떻게들 견디십니까?

2009년 8월 19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저주만 하다가 지옥에 간 김대중

南에 있던 김가 악마는 엊그제 죽었다는데 北에 있는 김가 악마가 아직도 살아있다. 두 악마가 동반자살하기를 바랐었는데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어떻든 간에 김대중이 마침내 죽기는 죽었다는데 나는 아직도 김대중의 姓氏를 모른다. 윤가집 아들이었는지, 제갈씨 아이였는지, 아니면 도요타란 일본사람 아들이었는지, 신문에서는 모두들 김 前 대통령이라 부르니, 김대중이 김가가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나는 지난 10년간 김대중을 대통령은 커녕 사람으로 대접을 안했기 때문에 자주 개(犬)대중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김대중을 충직 우직한 犬公들과 비교하는 것은 개에 대한 모독이라고 자주 반성했었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이런 험한 모욕을 퍼부을 수가 있단 말인가? 송구스럽지만 김대중은 사람이 아니었다. 인면수심 양두구육 惡과 증오의 化身이 바로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이 여든다섯 평생에 사랑한 것은 오로지 김대중 자신뿐이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마누라도 자살하게 만들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들들도 감옥으로 보내고, 자신을 위해서는 전라도 사람들을 거의 전부 최면에 걸어 자신을 민주화투사 슨상님이라고 부르게 만들고, 자신을 위해서는 북한주민들 계속 굶겨 죽이라고 악마 김정일을 살려놓고, 자신을 위해서는 돈으로 노벨평화상을 詐取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악마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려 했다. 거의 성공했었고, 앞으로도 죽은 김대중이 간신히 연명하는 산 대한민국을 결단낼 지도 모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김대중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7천만 韓민족이 죽고 망해도 괜찮다는 이기주의 사깃꾼 저주의 악마였다.

세상 일에 절대적이란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김대중이 대한민국 韓민족들에 절대적 반역자란 것은 절대적 사실이다. 김대중이 왜 그랬을까? 백년을 두고 연구해야 할 희귀표본 대상이지만, 필자의 결론은, 김대중은 태어나서부터 증오를 먹고 산 저주의 화신이었기 때문에 저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평생 하다가 가버린 것이다.

남한 빨갱이들은 물론, 머저리 아침이슬 이명박 정부까지도 김대중 國葬을 준비중이라니 나도 저주밖에는 말이 안 나온다. 아예 남북한 국장을 지내시지, 왜 남조선 국장만 지내시나? 김정일 장군님도 모셔오고, 김정운 왕자도 모셔오고, 아리랑 체조 팀도 데려와서 남북조선 국장을 지내시지 그랴! 중국에서는 호금도도 데려오고, 미국에서는 지미 카터도 데려가고, 최근 김정일을 만난 빌 클린턴도 데려가고, 선이 닿으면 바락 오바마까지 모셔가서, 국장이 아니라 세계만방葬을 지내시라!

그러나, 재미교포 남 아무개는 절대로 안 간다. 혼자서 하느님께 조용히 감사기도를 드릴 것이다. 하느님, 남조선 김가만 데려가지 마시고, 북조선 김가도 빨리 데려 가소서! 하느님,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이곳 생지옥 요덕에도 와주소서! 하느님, 제발! 왜 당신들에게는 저 요덕스토리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왜 내 귀에만 요덕귀신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매일 들리는가? 아마도 김대중이 살았을 때 너무 욕을 퍼부어서 김대중의 저주가 나에게만 뻐친 모양이다.

2009년 8월 19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Tuesday, August 18, 2009

장군님, 혀 깨물고 죽어라!

민족의 태양 천출장군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현대아산 회장이란 현정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다 말하라! 현정은이 원하는 것을 다 말하자 다 들어주셨다는 뉴스보도가 떴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다 말하라! 장군님께서 현 회장이 아니라, 이 남 아무개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다 말하라! 하셨다면:

장군님, 정치범수용소들을 몽땅 해체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풀어놔 주셨으면 합니다!
장군님, 배가 고파 탈북하고 싶은 백성들을 두만강 뙈놈나라는 위험하니 휴전선을 통하여 모두 다 남조선으로 내려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장군님, 스위스 비밀계좌 돈을 몽땅 찾아서 배 고프다는 인민들을 먹여 살리셨으면 합니다!
장군님, 남조선 피랍어부들, 국군포로들, 6.25사변 때부터 그동안 납치해간 남조선 사람들과 외국인들을 몽땅 제 나라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장군님, 남조선에 있는 장군님 부하 졸개들을 몽땅 북한으로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장군님께서 이런 저런 간단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실라면, 장군님께서 지금 당장 혀 깨물고 죽어주셨으면 합니다!

다 못 들어주겠다고? 예라, 이 쥑일 놈아! 네가 장군님은 무슨 장군님이냐! 똥물에 머리 처박고 죽어야 할 殺人마귀이지!

이런 간단한 부탁들은 다 제쳐놓고, 저 한심하고 발칙한 현대아산 여편네가 시어머니 제사는 안 지내고, 그 잘난 금강산 관광, 백두산 관광, 개성공단 관광이나 다시 열어달라느니, 이산가족중 로동당원들만 엄선해서 눈물 콧물 생쇼를 다시 벌이자느니, 등등, 그따위 한심하고 졸렬한 부탁만 하니, 장군님께서 흔쾌히 다 들어주시겠다 한 것이다. 아이구, 이 한심한 여편네야!

현대아산 여편네는 그렇다 치고, 이제 북괴들이 역도라고 매일 욕을 퍼붓는 대한민국 대통령 리명박은 어찌 할 작정인가, 바다 건너에서 눈을 흡뜨고 지켜볼 작정이다. 보나마나 뻔하드라도, 다시 또 속을 작정하고 지켜볼 작정이다.

2009년 8월 17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Saturday, August 15, 2009

노익장 삼총사

노익장 삼총사 (老益壯 三銃士)


필자가 두 번째로 번역한 링컨 책, 데이비드 허버트 도널드 교수의 “링컨 전기傳記” 출판기념회가 2003년 2월 12일, 링컨 생일을 기념하여 필자의 모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었다. 많은 탈북동지들이 참석해주었으나, 경호관계가 어려울 것 같아서 황 선생님을 모시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링컨 선생님”이신 김동길 교수님이 그날 축하 말씀을 해주시고, 시스템 클럽의 지만원 박사님도 지방출장중 달려와서 기념회에 참석 축하해주셨었다. 당시 그 출판기념회로 몇가지 좋은 일, 궂은 일이 있었는데, 그중 제일 반가웠던 일은, 이 출판기념회를 계기로 김동길 교수님과 황장엽 선생님이 얼마 후 김 교수님 댁에서 만나는 경사慶事가 일어났다. 그날 참석했던 한 탈북동지가 두 분의 첫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황 선생님은 1923년 평남 강동군에서 태어나시고, 김 교수님은 1928년 평남 맹산군에서 태어나셨다. 김 교수님은 해방 후 곧 남쪽으로 오셨고, 황 선생님은 1997년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셨다. 이렇게 동향同鄕이신 두 분이 곧 의기가 투합하여 진짜 민주투사 구국투사 동지로서 가까워지셨다 들었고, 두 분 모두 김정일과 김대중을 철저히 경멸하고 혐오하신다.

황 선생님이 2003년 10월, 워싱턴에 오셨을 때, 노구를 이끌고 서울에서 미국으로 달려오신 분이 또 한 분 계시다. 바로 대한민국 건국에 열혈애국청년으로 앞장 서서 빨갱이들과 투쟁하셨던 이철승 선생님이시다. “황 선생이 미국을 가는데, 내가 함께 가주어야지, 혼자 보낼 수가 있나!” 이렇게 황 선생이 김대중의 새장에서 잠시나마 풀려나 미국방문을 하게 된 것을 제일 반가워하고 고마워하신 분이 이철승 총재님이시다. 작년 10월, 디펜스 포럼의 수잔 숄티 여사가 북한인권운동으로, 2008년 서울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제일 수고해주신 분이 이철승 위원장님이시고, 제일 기뻐하신 분이 황장엽 선생님이시다. 황 선생은 여러 번 탈북동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좋은 세상 못보고 죽으면, 통일이 되어 자네들이 평양에 돌아가면, 김일성 동상을 까부수고, 바로 그 자리에 우리 수잔 숄티 여사의 동상을 세우게! 내 부탁이야!” 그러나, 황 선생님은 꼭 장수長壽하셔서, 김정일이 거꾸러지고 북한노예동포들이 해방되면, 김일성 동상이 거꾸러진 자리에 수잔의 동상을 손수 건립하실 것이다.

이 세 분이 이제는 8순이 훨씬 넘으셨는데도, 누란累卵의 위기危機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 젊은 사람들보다 더 열심이시고 분주하시다. 필자는 이 세 분을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한다. 정말 이 “별 볼일 없는” 무명 일개 재미교포를 그동안 이 세 분께서는 분에 넘치게 사랑해주셨다. 그 은혜를 갚을 길 없어서, 필자는 그동안 이 세 분께 받은 가르침을 필자의 무덤까지 모시고 갈 것이다.

이철승 선생님,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황장엽 선생님,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김동길 교수님,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오후에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gs.blogspot.com

황장엽 선생님

필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두 마리 악마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김정일과 남한의 김대중이다. 이 둘이서 짜고 북한동포들 3백만명을 굶겨죽였고, 그것도 심이 차지 않은지 대한민국과 남한국민 5천만을 김정일의 노예로 만들려 벼라별 악독한 짓을 다 해왔다. 필자는 이 둘만 죽으면 남북한 7천만 韓민족에 얼마간의 희망이 생긴다고 믿는다.

나보다 김정일과 김대중을 더 혐오하는 분이 계시다. 1997년 2월 12일, 생지옥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의 품안으로 오신 분이다. 필자가 분에 넘치게 지난 7년간 선생님으로 모셔온 황장엽 선생님이시다. 황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김정일이 저런 지독한 악마인 줄 깨닫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었다. 황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김대중이 저런 악질 역적인 줄 깨닫는데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 있다. 김정일과 김대중에 대한 황 선생님의 혐오는 정확하고 객관적이시다. 왜 저들을 미워해야 하나?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사랑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들을 미워해야 한다! 이것이 황 선생님의 확신이시고 주장이시다.

2003년 10월, 황 선생님이 워싱턴에 오셨을 때, 여러 재미교포 애국자들이 황 선생님에게 미국망명을 공개적으로 종용하고 심지어는 강요까지 했었다. 당시 수잔 숄티 여사의 디펜스 포럼 재단에서 주최하고 美연방국회 하원의원 회관에서 열린 황장엽 선생의 방미환영 오찬에서 한 在카나다 애국교포가 황 선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황 선생님, 미국으로 망명하실 의사는 없으십니까?” 역적 김대중과 남한 좌빨들이 서울에서 황 선생을 새장에 가두어 놓고 못살게 굴던 시절이었다. 많은 미주교포들이 황 선생이 방미를 기회로 미국으로 망명할 의사가 있으신 걸로 확신하고 있었다. 황 선생님은 在카나다 교포동지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선생님 특유의 단도직입적 즉답을 주셨다. “내 조국이 대한민국인데, 내 조국을 두고 어디로 망명하란 말입니까?” 필자는 그 때의 감격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내 조국이 대한민국인데, 내 조국을 두고 어디로 망명하란 말입니까?”

필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만 있으면, 이제는 고전이 된 황장엽 선생의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란 저서를 권한다. 이 책을 읽으면 악마 김정일을 속속드리 알게 되고, 역적 김대중의 햇볕 사기詐欺극을 속속드리 알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2007년 1월 13일, “우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란 칼럼을 내 블로그와 웹사이트들 계시판에 올린 적이 있다.

우리들이 꼭 읽어야 할 책
2007년 1월 13일

태곳적 얘기이지만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던 국어 선생님께서는 필자에게 도스토에브스키를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죄와 벌,” 그리고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에게 카라마조프는, 사람이 20대, 30대, 40대, 50대에 걸쳐서 반추를 하며 평생 읽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선생님께서 도스토에브스키의 문장은 “악문惡文의 명문名文”이라고 칠판에 써놓고, 건성 읽지 말고 재독 삼독하면 그 안에 든 뜻을 깨우칠 것이라고 자상히 가르쳐 주시던 일이다. 태곳적에 “요한 시집”과 “원형의 전설”을 쓰시고 군사정권 시절 정보부에서 무서운 고문을 당하신 후 절필切筆하여 1999년 8월 외롭게 타계하신 張龍鶴 선생님은 이렇게 필자의 평생 사부師父가 되셨다. 선생님 덕분에 필자는 평생 도스토에브스키를 읽으면서 살게 되었고, 아직도 가끔 카라마조프나 백치白痴를 꺼내어 읽고 있다. 어쩌다가 필자의 막내는 로서아어과를 전공하여 “악령惡靈”과 “백치白痴”를 그야말로 원어, 로서아 말로 읽었다. 자식 자랑은 흉이 아니라 해서 이 기회에 막내딸 자랑을 해본다.

북한에서 사람들이 파리목숨처럼 죽어 나가고 나라가 벼랑 끝에 서있는 현 위기에서, 우리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 그리고 한 번 읽고 서가書架에 꽂아놓을 것이 아니라, 자주 꺼내어 자주 정독精讀하여 사람들 살리고 나라 살리는 길을 배우고 생각해야 할 책이 있다. 필자는 항상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신문기사든 방송에서는 前 북한로동당 비서라고 꼭 밝히는 黃長燁 선생이 쓰신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 (2001년, 월간조선사 출판)”란 책이다. 황 선생께서는 2002년 9월 이 책과 함께 당신이 쓰신 책을 모두 한 권씩, 서울을 방문중이었던 필자에게 주셨다. 그 후, 필자는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을 여러 번 정독했다. 이 책에는 북한인권으로 김정일을 때려잡을 수 있는, 그래서 남북한을 구할 방법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김정일이 왜 악마인가! 왜 북한주민들이 3백만 이상 굶어 죽었는가?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왜 세기의 사기극인가! 우리가 나라를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황 선생께서 하신 말씀들이다:
“민주주의만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킨다.”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를 대신할 순 없다.”

제1장 - 인권과 양립할 수 없는 수령절대주의 체재
제2장 - 북한에서 본 인권유린 실태
제3장 -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방도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

옛날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지만, 지금은 인권으로 통한다. 장룡학 선생도 어린 필자에게 인권을 가르쳐 주신 것이고, 링컨 대통령도 필자에게 북한인권운동을 하라고 등떠미신 것이고, 황장엽 선생도 북한인권을 소상하게 이론적으로 필자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자는 것이 인권이다.

짐승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승냥이 떼들처럼 똘똘 뭉쳐서 사람들 죽이자는 놈들이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임동원 정동영 김근태 유시민 이종석 이재정들이다. 열린 돼지우리 안에서 꿀꿀대는 광란狂亂의 돼지 떼 “악령惡靈”들이다.

2007년 1월 13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황장엽 선생님,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2009년 8월 15일 광복절에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gs.blogspot.com

Thursday, August 13, 2009

"야 임마, 이리 와!"

아들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 있었던 우스개 이야기다. 서울에서 처남이 왔는데, 조카 아이가 귀엽다고 자주 아들 아이에게, “야 임마, 이리 와!” 하고 불렀다. 외삼촌을 좋아하게 된 어린 아들이 어느 날 외삼촌에게, “야 임마, 이리 와!” 라고 소리를 질러서 처음에는 누구를 오라는가, 어리둥절 하다가 급기야 조카 녀석이 외삼촌 자신에게 한 말이란 것을 깨닫고 박장대소를 한 적이 있다. 영어에는 존대 말이 없으니, 외삼촌 어른에게 한 말, “이리 오세요!” 도 “Come over here!” 이고, 친구 사이에 하는 말, “야, 임마, 이리 와!” 도 그저 “Hey, come over here!” 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청년이 다 된 아들 아이가 한국말을 꽤 하게 되었고, 존대나 반말도 구분하게 되었다.

우스개 소리를 하자고 또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아니고, 요즈음 신문에 나는 우리나라 말들이나 존칭에 어이가 없다. 살인마 김정일을 아직까지도 또박또박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니! 놈현이 자살했는데, 노무현 前 대통령 逝去하셨다고? 필자는 한 번도 김정일을 장군님이나 위원장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김정일은 개정일이고 살인마다. 놈현은 시끄러운 개구리였고, 자살을 했는지, 타살 당한 것이지, 서거하신 것이 아니고, 그냥 무책임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요즈음 조-중-동을 포함한 모든 신문에 나는 기사들이 90프로 다 못마땅하지만, 오늘 아침 인터넷 신문에 또 눈에 거슬리는 말투가 올랐다. “이순신 장군 평소 밥상이 어땠을까? 이순신 장군이 무얼 먹었을까?” 이렇게도 한국말을 모르고 어른에 대한 존대나 예우도 모르는 것들이 지금 우리나라 신문기자들이나 논객들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잡수셨지, 먹었다는 표현은 불경하고 무례하다. 이순신 장군은 꽁보리밥을 잡수셨어도, 진짓상을 받으셨지, 밥상을 받으셨던 것이 아니다! 고현 것들!

사실 이 신문기자들이 무얼 몰라서 저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요즈음 신문기자란 것들이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같은 빨갱이들에게는 위원장님, 서거 등, 깎드시 존칭 존대를 하고, 나라를 살리신 충무공께서 드시던 진짓상은 밥상이라고 부른다. 정말 배우지 못하고 생각이 없는 무지랭이들이거나 좌빨에 물든 바보 멍청이들이다. 영어에는 존대가 없지만, 우리 말에는 존대가 있으니, 나랏 어른에 관하여 얘기할 때에는 조심하고 경건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 평소 밥상이 어땠을까?” 너희들은 정말, “야 임마, 정신 차려!” 라고 야단 맞아도 쌀 후레들이다.

2009년 8월 13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Tuesday, August 11, 2009

충무공 이순신 장군 평전(18) - 최성재

충(忠)보다 효(孝)를 앞세운 조상과 후손들

신라의 충, 고려의 의, 조선의 효(4)
최성재

서기 660년 황산벌에서 5만의 신라군이 5천의 백제 결사대에게 초반전에서 4전4패하자, 현재로 말하면 중3, 고1 나이의 아들을 데리고 전투에 임했던 3장군 중 두 장군(대장군 김유신은 결혼이 늦어서 그 정도 나이의 아들도 없었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들을 삼국통일의 희생제로 바치기로 한다. 김유신의 동생 우장군(右將軍) 김흠순(金欽純, 金欽春이라고도 함)이 먼저 아들 반굴(盤屈)을 내보낸다. 그래도 신라군이 패배감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하자, 좌장군(左將軍) 품일(品日: 삼국사기에 성씨는 안 나왔으나 김씨라고 생각됨)이 아들 관창(官昌, 官狀이라고도 함)을 내보낸다.

이때 이들이 한 말이 ‘충이 곧 효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효다. 다시 말해서 충이 효보다 앞선다. 충이 없으면 효는 없다. 효 없는 충은 있지만, 충 없는 효는 없다. 우리 아들은 나이 16세에 불과하지만, 5만 대군의 표적(모범)이 될 수 있다. ’는 내용이다.

김흠순: 신하된 자로서 충보다 나은 것이 없고 아들된 자로서 효보다 나은 것이 없다. 국가의 위기를 맞아 목숨을 바치면 충과 효가 함께 온전해진다.

爲臣莫若忠 爲子莫若孝 見危致命 忠孝兩全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조선시대 같으면 아예 이런 어린 아들은 전쟁터에 데려가지도 않았거니와, 어찌 하다가 함께 위험을 맞이하게 되면 대를 이어야 한다며 먼저 고향으로 떠나보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토지(경제)와 문자(지식과 언론)를 독점한 양반은 군 복무가 아예 면제되었다. 또한 양반의 사노(私奴)도 감히 국가가 징집하지 못했다. 의병이 일어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군 복무 의무가 없었던 양반들 중 극히 일부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무기를 들고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들을 포함하여 징집 연령의 양반은 전원 정규군으로 편성되어야 했었다.

나라 전체로 보아, 조선시대는 국가 지도자들이 국가보다는 가문을 중시했던 것이다. 임금부터 도망가기에 바빴고 가족을 피신시키기 위해 온갖 수작을 다 부렸다. 임금 이하 관료들은 적이 안 보이는 곳에서는 큰소리란 큰소리는 다 쳤지만, 막상 적의 깃발만 보여도 민들레 꽃씨처럼 흩어졌다. 그리고는 후에 승리한 장군이 간혹 있으면 그를 헐뜯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모든 공은 얼레빗 왜군 대신 쳐들어온 참빗 명나라 군대에 돌렸다. 그래야 자신들의 입지가 공고해지기 때문이었다. 태조, 태종, 세종에 이르는 조선초기의 문무 조화는 중기 이후 찾아보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의(義)의 시대인 고려시대는 대체로 국가 위기를 맞이하면, 효보다 충을 앞세웠다. 광해군의 다음 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중원의 형세가 참으로 급급하기만 하다. 이런 때에 안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면서[自强] 밖으로 견제하는 계책[羈縻]을 써서 한결같이 ‘고려(高麗)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한다면’ 그럭저럭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인심을 살펴보면 안으로 일을 힘쓰지 않고 밖으로 큰소리치는 것만 일삼고 있다. 조정의 신하들이 의견을 모은 것을 가지고 보건대, 무장들이 올린 의견은 모두 (압록)강에 나가서 결전을 벌리자는 의견이었으니 매우 가상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지금 무사들은 어찌하여 서쪽 변경은 죽을 곳이라도 되는 듯이 두려워하는 것인가. ‘고려에서 했던 것에는 너무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부질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강홍립 등의 편지를 받아 보는 것이 무엇이 구애가 되겠는가. 이것이 과연 적과 화친하자는 뜻이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끝내는 반드시 큰소리 때문에 나라 일을 망칠 것이다. (광해군일기 1621/6/6)

中原事勢, 誠爲岌岌。 此時內爲自强, 外爲羈縻, 一如高麗所爲, 則庶可保國, 而近觀我國人心, 內不辦事, 外務大言, 試以廷臣收議見之, 武將所獻, 皆是臨江決戰之意, 甚爲可尙矣。 然則今之武士, 何以畏西邊如死域乎? 不及高麗遠矣, 徒虛語耳。 弘立等書, 取見(之)何妨乎? 此果和賊之意乎? 我國人終必以大言, 誤國事矣。

1619년 명나라의 요청으로 참전한 심하(深河)전투에서 참패한 후에 말로만 척화론(斥和論)을 일삼는 조정의 문무관료들에게 광해군이 질타하는 장면이다. 지휘권도 없고 군량도 없는 상황에서 오합지졸의 명나라 군대 휘하에서 조선군은 상당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궤멸되었다. 전투원 1만 명 중 최대 9천 명이 죽었으니까, 광해군의 밀명을 받고 강홍립이 일부러 항복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한명기). 항복 후에 취한 행동은 광해군의 명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임진왜란 7년 내내 이순신 장군의 2만 5천 수군을 제외하면, 조선 전체가 1만 명의 정규군도 유지하지 못하던 것에 비해 광해군은 외교수단인 기미책(羈靡策)으로 중립을 지키는 한편, 군사정책으로 자강책(自强策)으로 군대를 양성해서 비전투원 포함 1만 5,500명 대군을 요동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다. 이것 자체로도 그는 대단한 위업을 이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많은 숫자였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고 명나라가 서자이자 둘째인 광해군의 세자책봉과 국왕책봉을 빌미로, 재조지은(再造之恩) 곧 나라를 구원해 준 은혜를 갚으라며, 썩은 명나라의 썩은 사신들은 신라와 달리 군사력 턱없이 약한 바보 조선의 은(銀)을 빗자루로 쓸듯이 쓸어갔기 때문에, 요동에 대군을 파견한 것은 엄청난 출혈이었다. 어차피 가능성이 없는 전쟁에 마지못해 보내는 입장에서 그 절반만 보내도 되었다. 만약 그랬다면, 광해군은 국왕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국왕을 호위할 친위대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손도 못 쓰고 밀려났다. 광해군은 또한 왕권을 강화한다며 토목사업 곧 궁궐 짓는 일로 백성과 양반의 원성을 사며 국가예산을 너무 많이 썼다. 그게 그의 가장 큰 실정이었다.

하여간에 광해군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는 ‘말로만 국방’이란 게 없었다. 당시 동아시아 최대 어쩌면 세계 최대최강의 세 제국 요나라와 금나라와 원나라를 맞이하여 앞의 둘은 스스로의 힘으로 물리쳤고, 마지막 원나라에는 40년간 버티다가 항복했지만 유례없이 직접통치 아닌 간접통치 받은 군사강국이었다.

광해군의 능수능란한 중립외교와 치열한 정보전과 피나는 자강책에 대해 그의 정권 기반인 대북파 영수 이이첨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자중지란이 일어난 것이다. 자연히 망해 가는 명나라에 무조건 충성하는 것, 그것은 조선이란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정권만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변질된 효도였다. 효도는 부모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고, 부모가 늙어 죽는다고 하여 변할 수 없다. 따라서 죽어가는 명나라도 언제나 옳다고 믿고, 또한 언제든지 소생할 것을 믿고, 죽어가는 부모에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고 다리의 살을 베어 불고기를 해 드림으로 스스로의 생명이 위태롭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듯이 지극 정성으로 섬겨야 했다. 이런 자들에게 온통 광해군은 둘러싸였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는, 김종수의 논문에 따르면, 1618년부터 인조반정이 일어나는 1623년까지 7년 동안 왕의 경호를 책임지는 훈련대장을 11번이나 교체했을까. 이에 비해 인조는 재위 26년 동안 훈련대장을 4번밖에 교체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해도 인조는 오늘로 말하면 여야 막론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쫓겨날 염려가 없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조상의 효 DNA는 오늘날에도 맥맥히 이어진다. 김유신과 지채문과 이순신의 충 또는 의 DNA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졌다. 반면에 국가보다 가문을 중시하고 정부보다 패거리를 앞세우는 조선시대 중후기의 유습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과 이명박으로 이어진다. 김일성의 과오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으로, 민족최대 반역자를 사실상 어버이로 받든 김대중과 노무현을 보고 나라 걱정이 앞선 여론이 거세게 일어난 시점에서 이명박은 이전보다 약 10배의 표차로 승리한 만큼 김유신과 이순신, 이승만과 박정희의 뒤를 이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했다. 촛불 시위에서, 북한인권 문제에서 그는 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누가 대신 싸워 주길 바랐고 누가 대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길 바랐다. 법치를 확립하고 인권을 되살리고 국가를 중흥할 시점에서 모택동이 조종한 문화혁명 시기에 그러했듯이 경찰이 폭도에게 얻어맞아도 방송이 이를 정반대인 양 물 타기하는 걸 내버려 두고, 한국인이 북한에 육지로 바다로 인질로 끌려가도 언제든지 대량 인질이 될 수 있는 위험한 곳에 있는 국민을 위해 중도실용 대통령은 안전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개성에서, 살인죄가 아닌 한 붙들려 갈 수 없는 곳에서 붙잡혀 가서 100일이 넘었지만 이름도 못 밝히고 겨우 유씨라는 성만 밝혔다.

국가야 망하든 말든, 회사야 망하든 말든, 정당이야 망하든 말든, 국회야 아수라장이 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들일수록 말씀이 화려하고 요란하다. 거둥이 거창하고 몸짓이 현란하다. 손발이 새털처럼 가볍고 차돌처럼 억세다. 300만이 굶어 죽어도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만경대 김씨가 건재하기만 한다면, 이미 군사력 외에는 북한은 완전히 망해 버렸지만,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전쟁을 일으킨들 중국에 편입되거나 한국에게 흡수통일될 게 뻔해도 어버이 수령의 권력만 유지되는 한 그는 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민주의 이름으로, 통일의 이름으로, 민족(이들에 따르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민족이나 이승만과 박정희는 민족이 아님)의 이름으로 죽은 김일성과 산 김정일과 산 김영삼과 산 김대중과 죽은 노무현에게 어버이 이상의 효를 다하면, 명예와 권력과 돈이 쏟아진다. 국가로부터 온갖 보호는 다 받으면서 국가 이익은 언제나 뒷전이다. 정당이면 정당, 노조면 노조, 시민단체면 시민단체, 종교단체면 종교단체, 농민회이면 농민회, 부녀회면 부녀회, 거룩한 말은 도맡아 하면서 오로지 집단이기주의에 혈안이 되어 있다.

김유신과 이순신을 존경한 박정희 때는 안 그랬다. 공부를 하더라도, 일을 하더라도, 놀더라도 국민교육헌장과 애국가와 태극기를 항상 앞장세웠다. 스탈린과 모택동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된 반국가 집단에 대해서는 추호도 양보가 없었고 꿈속에서도 곁눈질하지 않았다. 데모를 하더라도 김일성 만세는 절대 입에 올리지 못했다. 광주사태 때도 이런저런 외부세력이 끼어든 게 분명하지만, ‘오판하지 말라!’는 말의 깃발이 곳곳에 나부꼈다.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면서 4.19의 혼란을 겪으면서 한국인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비로소 몸으로 배웠다. 국가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경제도 국가 주도로 이뤘다. 기업하는 이들도 기업보국의 정신으로 일했다. 가능하면 많이 고용했고, 가능하면 해고하지 않았고, 가능하면 사업을 자꾸만 키웠다. 국졸, 중졸 사원들에게 공부도 시켜주었다. 그들을 중졸, 고졸로 만들어 주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고, 이런 기업이 어디 있는가. 국가 전체로 흑자를 이룩해야만 까마득히 높은 미국과 일본을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수출입국에 총력을 기울였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슨 공부를 하더라도 일본을 따라잡겠다고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서건 빈둥거리는 자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서울대 법대 나왔네, 10년이 넘도록 인생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고시공부하는 자는 인간취급도 않았다.

그 시절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의사와 국회의원은 한참 우선순위가 밀렸다. 선진국이 되려면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함을 나라 전체가 절감함에 따라, 60년대부터 공대와 자연대가 최고의 인기학과로 떠올랐다. 그것이 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80년대는 대학 입학 후 인생관이 완전히 바뀐 자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국가보다 계급을 앞세운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대한민국과 미국은 적이었다. 주적이었다. 국가보다 가문이나 패거리를 앞세운 자들 때문에 성장동력이 지난 20여년간 계속 떨어졌지만, 그 때 이공계로 간 인재들이 한국을 아직도 만만찮은 나라로 유지시키고 있다. IMF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0대부국(Ten Rich Countries)이다. 인구가 2천만도 안 되는 여러 나라들은 개인소득은 높을지 모르나 전체의 부가 한국에 어림없이 못 미친다. 인구가 1억이 넘는 나라들 중에 국가 전체의 부는 많을지 모르나, 질과 양 양쪽에서 세계10대 부국에 끼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이제는 다시 충과 효가 모순되지 않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문을 최우선하는 김정일에 의해, 2천만으로부터 지극 효도를 받고 나아가 7천만으로부터 지극 효도를 받으려는 스탈린 꼭두각시의 아들에 의해 반드시 대한민국은 6.25에 버금가는 쓰라린 경험을 맛볼 것이다. 그의 2백만 군대와 핵무기와 땅굴과 한국 내 동조세력은 장난감이 아니고 허수아비가 아니다.

(2009. 8. 9.)

빨간 오리 리명박

"When I see a bird that walks like a duck and swims like a duck and quacks like a duck, I call that bird a duck."

“새가 한 마리 가는데, 걷는 것도 오리같이 걷고, 헤엄치는 것도 오리같고, 꽥꽥거리는 것도 오리같으면, 그 새는 분명히 오리임에 틀림없다.”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을 두고 한 미국 속담이다. 대통령 되기 전부터 “난 곧 죽어도 중도실용이다!”란 해괴한 슬러건을 내걸고 내 속을 썩이더니, 어제는 간당간당하는 빨갱이 역적 김대중을 병원으로 찾아가서 빨갱이 마누라 이희호, 빨갱이 개눈깔 박지원을 만나서, 빨갱이 김대중 슨상님은 집념이 강한 분이니 다시 일어서실 것이라고 함께 기도를 했다 한다. 빨갱이 김대중이 다시 살아나면 나라를 빨갱이 세상으로 만들 일밖에 없는데, 왜 그런 빨갱이의 회복을 기도까지 하면서 바라야 하나? 살인마 김정일을 식견있는 지도자라고 부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또 속아서 뽑아준 이명박 자신을 독재자라고 부른 노역적 개대중을 살려서 어쩌겠단 말인가?

이명박은 며칠 전, 빨갱이 명찰은 안 달았어도 빨갱이들이 하는 말을 고대로 복창하는 현병철이란 머저리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들어 앉혔다. 화염병 던지는 빨갱이들에게는 아무 잘못 없고, 빨갱이들에게 얻어맞은 경찰이 과잉진압 했다고 떠드는 놈이 정신 있는 놈인가? 인권위원장인가? 빨갱이 아닌가? 뭐라고? 국가보안법 폐지 못하면 투신자살까지 할 놈으로 보이니, 이 놈이 놈현을 닮아도 더럽게 닮았다.

김정일이 핵을 포기만 하면 400억불을 퍼주겠다고? 누구 맘대로? 북한사람들 인권은 잠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금강산 해변에서 빨갱이들에게 사살 당한 남한국민은 어쩔 거고, 개성공단에서 납치감금 당한 남한국민은 어찌할 건가? 현대아산 과부를 평양에 보내서 비두발발하면 김정일이 선심 써서 죽은 남한국민을 다시 살려내고, 납치감금한 남한국민을 돌려보낼 건가? 김정일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민족의 태양 장군님이시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놓지는 못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하고, 개성공단 임금 올려주고, 더 나아가서는 김정일 핵무기 더 만들라고 400억불이나 퍼주겠다고? 누구 맘대로?

뻔할 뻔 자이다. 빨갱이 老賊 김대중이 죽으면, 빨갱이 오리 이명박이 아마, 노무현 葬事 때보다 열 배 스므 배는 더 미친 광란을 벌일 것이다. 남한 전라도 국민장이 아니라 남북한 國葬을 지내주려 할 것이다. 김정일과 이명박이 손에 손잡고, 민주화 투사 빨갱이 김대중을 국립묘지에 모시려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이건 악몽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닥아온 현실이다. 국보법 폐지! 남북한 國葬! 미군 철수! 이같이 正午 High Noon을 가르키는 분침 초침이 재깎재깎 움직이고 있다. 남북통일, 적화통일이 눈앞에 닥아오고 있다.

걷는 것도 그렇고, 헤엄치는 것도 그렇고, 꽥꽥대는 것도 그러면, 그런 놈은 분명 빨갱이다! 그런 빨갱이 오리를 믿고, 아직도 서성대는 대한민국 보수우익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여, 다시 한 마디 꽥꽥대어 본다.

중도실용 리명박은 뻐꾸기도 아니고, 나라 망칠 빨갱이 오리입니다요!

2009년 8월 11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Thursday, August 06, 2009

김정일을 지금 당장 잡아 죽여야 한다!

김정일을 지금 당장 잡아 죽여야 한다!

이 세상에 북한같은 생지옥은 다시 없고, 이 세상에 김정일같이 악독한 놈은 다시 없다. 어린 여기자들을 납치해서 12년 중노동형을 때려놓고선, 너희들이 급하면 내가 지정하는 거물급 정치인을 보내서 데려갈래면 데려 가라! 세상이 이런 악독한 놈이 어디 있는가?

북한인권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결정이, 북한사람들에게도 지원을 하면 안 된다!란 주장이었다. 김정일이 아무리 미워도 굶어죽고 맞아죽는 북한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식량도 보내주고, 옷도 보내주고, 약도 보내주자! 그런데 탈북자들 수십명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 식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약을 보냈다고요? 그런 식량 본 적도 없고, 먹은 적도 없고, 그런 옷 입은 적도 없습니다. 북한주민들에게 식량과 약을 보내던 텍사스州 재미교포들이 북한을 다녀와서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보내준 빵을 그 아이들이 먹은 적이 없대요! 개자식 김정일은 전세계에서 공수해온 산해진미 음식을 매일 처먹고 있다.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씨가 쓴 책에 다 적혀있다.

유나와 로라가 비행기에서 내려서 가족들과 껴안는 것을 보면서, 유나가 어린 딸아이를 껴안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참 잘 되었다! 그러나, 북한인권을 10년 관여하면서, 내가 많이 바뀌었다. 유나와 로라가 가족을 만나서 좋지만, 그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 피납어부들, 국군포로들, 납북 당한 일본사람들, 요코다 메구미 어머니와 아버지, 요덕수용소 수인들, 가족들은 내버려 두고 좋아만 해야한단 말인가?

유나와 로라와 클린턴과 고어가 앞으로, 김정일은 납치범이다! 김정일은 살인범이다! 김정일은 인종학살범이다! 라고 매일 웨치면서 북한주민들 구하기 운동에 나선다면, 이번 일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두 여기자만 살리기 위하여 클린턴이 날아가서 김정일에게, 미안합니다, 저 여자들 내보내 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장군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돌아왔다면, 이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지금도 매일 납북 당하고, 수용소에 갇혀있는 수십만 딴 유나와 로라에게 무어라 해명할 것인가?

살인마 김정일을 잡아죽여야 다시는 유나와 로라가 북한 땅 근처에 갈 필요도 없고, 클린턴이 평양에 날아가서 김정일과 하기싫은 악수를 할 필요도 없고,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식 납치 당할 걱정없이 다리 뻗고 잘 수 있다. 김정일을 지금 당장 잡아 죽여야 한다!

2009년 8월 6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Tuesday, August 04, 2009

너무들 한다

너무들 한다

미국 경찰이나 연방수사국에서는 납치인질범과는 협상을 못하게 되어있다. 아예 할 생각도 안 한다. 인질을 풀어 놓아라! 안 풀어 놓아? 그 다음에는 검정옷을 입은 스왓(SWAT – Special Weapons & Tactics Team 특수무기 작전대) 팀이 드러 닥친다. 스왓 팀의 목적은 인질을 살리자는 것이지만, 급하면 인질범은 현장에서 사살해도 된다. 수십명 특수부대원들이 몰려가서 인질범을 철통같이 포위한 다음, 인질범의 그림자만 보여도 정조준 원거리 사격으로 인질범을 사살한다. 랜섬 모니 Ransom Money를 내라고? 어림도 없다.

어제 빌 클린턴 美 前대통령이 갑자기 평양에 날아가서 납치인질살인마 김정일을 만났다 한다. 前 대통령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15년 전 헛똑똑이 美 前대통령 지미 카터가 김정일의 아비 김일성을 만나서 눈가리고 아웅 합의문을 만들어낸 후 3백만 북한백성들을 굶어죽도록 내버려 두더니, 이제는 또 美 前대통령 빌 클린턴이 김일성보다 더 지독한 놈 김정일을 만나서 옛날 지미 카터 흉내를 내고있다. 어쨌거나 두 여기자를 구해오는 것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클린턴이 김정일에게 랜섬 모니를 갖다 바쳤거나, 핵무기 포기시킨다는 미명 아래 김정일 악마와 평화조약을 맺자고 한다면, 클린턴은 카터보다 더 한심하고 더 나쁜 놈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북한인권 일하면서 속아도 참 많이 속아왔다. 김대중 노무현에게는 속은 것이 아니고, 매국노 반역자 빨갱이들과 싸운 것이지만, 조지 W. 부시에게 속았고, 이명박에게도 속았고, 이제는 또 오바마, 힐러리, 빌 클린턴에게 속을 모양이다. 미국이 김정일의 핵문제 때문에 북한주민 2300만을 버리고, 대한민국 동의없이 김정일과 평화조약을 맺는다면, 미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도 아니고, 우리의 우방도 아니다. 너희들이 왜 남의 나라 일에 간섭이냐고! 따져야 하고 내질러야 한다.

갈수록 더 확실해지지만, 우리 일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이 진정으로 우리를 돕는다면 혈맹 우방이지만, 카터나 클린턴이나 W. 부시, 오바마 식으로 핵이 우선이고 북한주민의 생존권 인권을 외면한다면, 우방이고 뭐고 내지를 것은 내질러야 한다. 우리 한반도 한민족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우리 빼놓고 김정일 만나지 마라! 김정일 대갈통 위에 정밀폭탄을 떨어뜨리는 일 이외에는 절대로 김정일과 따로 만나서 허튼 수작들 하지 마라!

참 해도 너무들 한다.

2009년 8월 4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