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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November 18, 2010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필자는 1968년 미국에 유학와서 첫 번째 여름방학인 1969년 여름, 석 달동안 펜실베이니아 州 수도인 해리스버그란 곳에 있는 건축설계 사무실에서 일했다. 해리스버그에서 게티스버그까지는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여서, 주말이면 식구들과 함께 서너 번 게티스버그를 구경간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당시 링컨이 누군 지도 잘 모르던 때라 게티스버그가 美남북전쟁에서 제일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적 관광지쯤으로 생각하며 게티스버그에 놀러갔었다. 링컨을 알게된 후에는 지난 25년간, 아마 20번도 넘게 게티스버그를 다녀온 것 같다.

美남북전쟁의 게티스버그 전투는 1863년 7월초, 남부반란군 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의 7만여명 군사와 연방군 사령관 조지 고든 미드 장군의 9만여명 군사가 사흘에 걸쳐 죽기살기로 싸우면서 5만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큰 전투였다. 게티스버그 전투 이후, 남부 반란군은 도망치면서 싸우는 군대가 되었고, 연방정부군은 반란군을 쫓아다니면서 싸우는 군대가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두 달 반쯤이 지난, 11월 19일, 게티스버그 軍묘지를 봉헌하는 자리에서, 후세 세상에서 제일 유명해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Gettysburg Address”이 태어났다.

게티스버그 전투에 관한 역사책은 셀 수없이 많지만, 그 중 필자가 제일 흥미있게 읽은 책은 마이클 샤라란 작가가 쓴 “살인 천사들 Killer Angels”이란 게티스버그 전투의 역사소설(1974년 출판)이고, 이 역사소설은 다시 “Gettysburg”란 제목의 4시간 반짜리 장편영화로 만들어졌다(1993년 제작). 또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분석 정의한 책에는 개리 윌스란 역사가의 “게티스버그의 링컨 Lincoln at Gettysburg”이란 책이 있다(1992년 출판).

게티스버그 전투의 최고 영웅은 연방군의 좌측면을 1개 연대병력으로 끝까지 死守하여 연방군의 붕괴를 막은 조슈아 로렌스 챔벌레인 대령이었다. 챔벌레인은 전쟁 前 메인 州 보우든 대학에서 修辭學 교수를 하던 학자였는데, 전쟁이 터지자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무훈을 세우고, 게티스버그 전투에서는 최고 수훈을 세워, 살아 생전에는 받기 힘든 “Medal of Honor 최고 武功훈장”까지 받았다.

1863년 11월 19일, 게티스버그의 아침은 조용하고 따듯했다. 게티스버그 묘지 부근에는 아직도 미처 매장하지 못한 軍馬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썪고 있었고, 진흙 바닥에는 포탄에 맞은 구멍들이 여기저기 파여있었다. 그날 묘지 봉헌식의 주제 연설을 맡았던 사람은 하버드 대학 총장을 지낸 에드워드 에버렛이란 유명한 학자-정치가-연설가였다.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에버렛 다음에 잠시 한 말씀 하시라는 뜻에서 초청되었었다. 에버렛의 연설은 장장 2시간이나 계속되었다. 해는 중천으로 솟았고, 봉헌식에 모인 2만여명 군중은 지루해 하기 시작했다.

링컨은 종잇장을 들고 일어섰다. 링컨의 안색은 창백했으나, 연설문을 든 손은 떨리지 않았다. 군중들은 에버렛의 연설 끝에 열심히 박수들을 쳐서인지, 대통령에게 보내는 박수는 따듯했으나 곧 그쳤다.

링컨의 트럼펫같은 소리가 게티스버그 들판으로 퍼져나갔다.

“지금으로부터 87년 前, 우리들의 國父들께서는, 자유에서 着想되었고, 만민은 평등하다는 大前提에 입각한 새로운 국가를 이 땅에 건립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착상과 대전제에 입각해서 건립된 나라가 과연 영구히 존속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크나큰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전쟁의 대격전지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 격전지의 일부를, 그러한 나라가 존속되도록 이곳에서 생명을 바친 분들의 마지막 휴식처로 奉獻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야하는 것은, 全的으로 타당하고 적절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땅을 봉헌할 수도 없고, 神聖化할 수도 없으며, 淨化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땅은, 이곳에서 싸우다가 戰死하신 분들이나, 살아남으신 모든 용감한 분들이, 우리가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있는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미 훨씬 더 신성하게 만들어놓으신 聖域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여기에서 하는 말을 별로 注目하지도 않을 것이고, 오래 기억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 분들이 이곳에서 한 일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제까지 저 분들이 그토록 숭고하게 수행해온 이 未完의 성업에 온몸을 바치기로 맹서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우리 앞에 남겨진 이 크나큰 役事에 온몸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영예롭게 전사하신 이 분들로부터, 우리는 이 분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 獻身하신 그 大義에, 보다 더 큰 헌신을 맹서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여기에서 돌아가신 이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이 보우하시는 이 나라가, 새로운 자유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존속하도록.”

게티스버그 연설 다음 날인 11월 20일, 에드워드 에버렛은 링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각하께서 어제 봉헌식에서 정말 간결하고 적절하게 각하의 생각을 표현하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찬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어제 장장 2시간에 걸쳐 한 제 연설이, 각하께서 2분 간에 정확하게 표현하신 봉헌식의 의미에, 조금이라도 근처에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겠습니다.”

2010년 11월 19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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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Anonymous Anonymous said...

정치가의 연설은 간단명료해야 하며 따라서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나 정책에 정당성과 자신감 그리고 확신이 있으면 우물쭈물하며 눈치나 보는 행태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링컨은 과연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4:5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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