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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November 22, 2007

떼는 떼대로 간다

떼는 떼대로 간다


오늘 아침 李長春 前 대사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BBK 명함을 공개해버린 뉴스를 읽으면서 또 링컨과 남북전쟁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역사는 되푸리 반복되고 애국투사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습니다. 150년 前 링컨의 미국에도 프랭크 블레어 2세란 이름의 이장춘 대사 투사 애국자가 있었습니다.



1850-1860년대 흑인노예 해방운동에서 링컨보다 한참 앞서간 정치가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링컨에게 물먹은 샐먼 P. 체이스란 오하이오 주시사였습니다. 장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독실한 기독교인 정치가로서 자신을 예수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중 나온 미국 지폐에 “In God We Trust,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서로 믿는다” 란 말구를 찍어넣은 사람도 바로 체이스 재무장관이었습니다. 링컨은 新黨 공화당에서 한참 선배였던 체이스와 수워드를 대선후보 경선에서 물리친 다음 대선 본선에서도 이기자, 수워드에게는 국무장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체이스에게는 재무장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링컨의 戰時내각은 이렇게 政敵들의 모임으로 시작되었고 장관들마다 內心 자신이 링컨보다는 훨씬 더 나은 대통령깜이라고 생각들하고 있었습니다.



국무장관 수워드는 링컨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몇 달 안 되어 링컨의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고 자신의 대통령 꿈을 곧 접었지만 체이스는 링컨의 재무장관을 하면서도 대통령 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방 全國 곳곳에 심어놓은 재무부 직원들을 동원하여 정치자금을 마련하고 세력화하였습니다. 당시 時勢가 하늘까지 치솟은 목화솜 장사 許可도 재무장관 체이스 관활이었고, 체이스는 자기 자신의 얼굴을 새로 발행한 紙幣에 찍어넣을 정도로 대통령 꿈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남북전쟁은 전쟁 후반 마지막 판까지 승패를 가리기 힘든 血戰 全面戰 慘劇이었습니다. 전쟁에서 군인들이 많이 죽고 연방재정은 파탄이 나고 모두가 살기 힘든 세월에서 1864년 11월 링컨의 재선은 전혀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체이스 재무장관은 뭍밑에서, 링컨 뒤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재무부 직원들을 동원하고 연방상원의원들을 동원하여 링컨에게 후보사퇴를 강권했습니다.



바로 이때 총대를 메고 나선 사람이 프랭크 블레어 2세란 미조리 州 출신 정치가 군인이었습니다. 지금도 백악관 맞은 편에 있는 公館의 이름이 블레어 하우스(집)라고 남아있을 정도로 남북전쟁 前後 블레어 집안은 유명한 정치 세력가문이었습니다. 老신사 정치가 프랭크 블레어 1세, 몽고메리 블레어 우정장관, 프랭크 블레어 2세 소장은 모두 링컨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연방국회 하원의원이면서도 연방군 소장으로 서부전선에서 열심히 반란군과 싸우고 있던 프랭크 블레어를 링컨이 잠시 군복을 벗고 연방국회로 오라고 불러 들였습니다. 프랭크는 만사 제치고 워싱턴으로 달려와 체이스의 재무부 직원들의 詐欺와 非理, 체이스의 물밑 대통령 선거운동 등을 국회연설 일격으로 체이스의 대통령 꿈을 하루 아침에 水葬시켰습니다. 프랭크 소장의 국회연설과 윌리엄 T. 셔먼 장군의 아틀란타 공략에 힘입어 링컨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시 대통령 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떼는 떼대로 간다란 기똥찬 名言이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정말 火急하지만 제대로 된 정권교체를 해야 합니다.



李長春 大使님, 감사합니다.



2007년 11월 22일

링컨이 시작한 미국 추수감사절 날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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