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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13, 2010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평생 政敵은 일리노이 州나 연방국회에서 링컨보다 훨씬 앞서 갔던 스티븐 A. 더글러스(1814-1861)란 정치가였다. 링컨은 키가 6피트 5인치(196 센티미터)의 꺽다리였으나, 더글러스는 5피트 4인치(163 센티미터)의 난쟁이였다. 이렇게 키가 작았던 더글러스이지만, 그는 별명이 “작은 巨人, Little Giant”으로 불리울 만큼 당시 전국적 정계거물이었다. 링컨은 정계에 들어서면서 휘그黨이란 보수당에서 출발했다가, 1850년대 휘그당이 지리멸렬 기울면서 공화당으로 바뀔 때, 링컨은 마지막까지 휘그당에 남아있다가 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여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었는데, 더글러스는 평생 민주당원으로 북부 민주당의 최고 거물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서로 잘 알던 이 둘은 1858년 연방국회 상원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맞부닥친다. 인지도나 전국 정치판에서 훨씬 열세였던 링컨은, 정치자금도 많고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더글러스 상원의원에게 7번에 걸친 정견토론회를 일리노이 州 여러 도시에서 열자고 제안한다. 아풀싸, 더글러스는 링컨의 덫에 걸려버렸다. 토론회를 피하자니, 겁쟁이라고 조롱을 받을 것이고, 링컨과 토론회를 하면 일리노이 州 촌닭 링컨의 수준으로 자신을 격하시키는 것이고… 더글러스는 울며 겨자먹기로 링컨의 제안에 동의하고 7차에 걸친 토론회를 시작한다. 이 토론회는 2년 후 대선을 바라본 링컨의 포석이었고, 당시 이 둘의 토론회는 무승부로 끝났다고 평가했지만, 후일 돌아보면 링컨의 완승으로 끝난 것이 분명하다. 더글러스는 1858년 연방국회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링컨은 2년 후인 1860년 미합중국 16대 대통령으로 뽑혔으니까.

링컨-더글러스 정견토론회는 아직도 미국에서 정치를 하려는 젊은이들에게는 필독 고전이다. 링컨의 주장: 흑인도 백인같은 인간이고, 노예제도는 미국에서 점진적으로 종국에는 사라져야 할 惡이다. 더글러스의 反論: 흑인들이 어떻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냐? 그렇다면 링컨은 흑인 마누라를 데리고 살 작정인가? 노예제도의 변방확산은 새로 편입되는 州民들이 결정할 사항이다!

링컨은 이 토론으로 미북부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뜨기 시작했으나, 더글러스는 이 토론으로 미남부 민주당을 잃었고, 2년 후 대선에서 민주당은 사분오열했으나, 공화당은 똘똘 뭉쳐서 링컨을 밀었다. 링컨은 이렇게 최소한 2-3년 앞을 내다본 정치가였다.

링컨이 대선에서 이긴 후, 남부 노예州들이 연방에서 이탈하면서 미연방은 명실 공히 남북으로 갈라지고 미남북전쟁은 시작된다. 링컨이 북부에서 7만5천명의 자원군을 모병한다고 발표했을 때, 대선에서 패한 더글러스는 백악관으로 링컨을 찾아가서, 차라리 20만 대군을 모병하라고 충고한 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미연방과 링컨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다가, 과로 끝에 남북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861년 6월 3일 병사한다.

더글러스도 평생 노예제도를 혐오했었으나, 남부 노예州들의 지지를 잃으면 평생 꿈이었던 대선에서 이길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중도실용 제임스 뷰캐넌과 친남부 대법원장이었던 로저 터니와 실제적으로 함께 공모는 하지 않았으나, 당시의 [중도실용], 말하자면 미합중국을 정통으로 인정은 하되 노예제도에는 어정쩡한 정치노선을 택하였다. 더글러스의 중도실용 정책이 바로 [캔자스-네브라스카 법안, Kansas-Nebraska Act – Popular Sovereignty 주민 자주권: 캔자스 주의 노예제도 문제는 캔자스 주민들이 결정할 것이란 법안]이란 정책이었다. 이로서 더글러스는 북부 여론에서도 얻어맞고 남부 노예주들에게도 얻어맞는 동네북이 되어버리고, 대선에서도 지는 개인적 비운을 맞아, 과로로 사망했다 하지만 실은 홧병으로 죽은 것 같다.

김정일에게 잘 보여야 남한 대통령이 가능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세상이 계속된다. 김대중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잘 보이려고 퍼다 바치고 만나 보다가 이제는 죽었고, 이명박도 천안함 참사 이전까지는 김정일 만나려고 안달을 했다 한다. 김정일은 미남부 노예主들보다 100배 더 악독 잔인한 악마다. 더글러스는 미남부 노예주들에게 잘 보이려다 링컨에게 패배했다. 남한의 종북세력들은 물론이고, 이명박도 김정일에게 잘 보이면 만년 득세할 것 같지만, 백성들은 만년 속지 않는다. 종국에는 김정일과 종북세력과 중도실용 가짜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링컨이 한 말씀이 있다:

"It is true that you may fool all of the people some of the time; you can even fool some of the people all of the time; but you can’t fool all of the people all of the time." “전 국민을 잠시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 또한 일부 국민들을 오랜 세월 속이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전 국민을 영구적으로 속이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링컨은 국민을 속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글러스에게도 이기고, 남북전쟁에서도 이기고, 노예들을 해방시킨 후 전 인류에게 미국이란 나라를 선물했다. 중도실용 더글러스는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이려다가 링컨에게도 지고 미국민들에게도 버림 받았다.

그러나 스티븐 더글러스를 남한의 종북좌파나 사이비 중도실용에 비할 수는 없다. 스티븐 더글러스는 대선에서 지고 남북전쟁이 터지자, 미합중국 편에 확실히 서서 평생 정적이었던 링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면 스티븐 더글러스는 훌륭한 사람이었고 훌륭한 정치가였다.

대한민국에 링컨은 커녕 스티븐 더글러스만한 정치가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필자가 아는 단 한 사람의 예외는, 북한인권을 외치면서 김정일도 싫어하고 중도실용도 싫어하고 국민들을 한 번도 속인 적이 없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이다.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2010년 6월 13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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