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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pril 03, 2010

故 남기훈 상사님에게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집안어른들은 철저히 四代奉祀(사대봉사) 유교사상으로 사셨고 집안이나 가문을 따지는 분들이셨다. 어렸을 때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은 평생 간다. 고국을 떠나 미주에 와서 산 지가 40년이 넘건만, 아직도 내 고향 용인 꽃골을 꿈에 볼 때가 많다. 꽃골은 할아버지 할머니 댁이었고, 수백 년 남씨가문 선조들이 묻혀계신 곳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 내려가면 항렬에 따라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에게 하대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한 적이 있었다. 내 이름 南信祐에서 “祐” 字가 우리代 항렬이고, 우리 다음代는 “基” 字 돌림으로, 미국에서 낳은 아들 이름은 南基雄이고 내 조카들 이름도 모두 가운데 “基” 字가 들어간다. 아들 기웅이란 이름은, 손자가 태어났을 때 서울에 계신 기웅이의 할아버님이 지어 보내신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아침에 인터넷을 열어보니, 실종된 천안함 해군장병중 제일 먼저 시신을 찾았다는 戰死者의 이름이 “남기훈 상사”이다. “훈” 자를 한자로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南基훈 상사”는 분명 내 조카뻘이다. 남기훈 상사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오면서 눈물이 난다. “남기훈!” 잘 생긴 얼굴에 눈빛은 炯炯하다. 해군 생활을 오래 했다지만 아직 36세의 젊은 나이에 젊은 안해와 어린 아이들 셋을 두고 殉國했다 한다. 가슴이 아프지만 남씨가문에 순국영웅이 났다. 이들 46명의 순국영웅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이, 그들의 죽음을 戰死가 아니라 事故死로 몰아가면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남기훈 상사는 김정일의 개들과 맞싸우다가 戰死한 우리 문중의 영웅이다. 청와대에 앉아서 아직도 천안함 침몰이유를 모르겠다며 연막을 치는 아침이슬 類와는 비교도 안 되는 護國戰士다.

필자는 지난 년말 아프가니스탄 전장으로 떠나는 미군장병과 식당에서 만난 일과 美남북전쟁의 호국영웅 설리반 벌루 중사가 전사 직전 자기 안해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했던 적이 있다. 故 南基훈 상사님의 안해되는 분에게 그 편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2010년 4월 3일 南信祐 드림:


식당에서 일어난 일/2009년 12월 10일

어제 사무실 근처에 있는 부페식 중국식당에서 사무실 동료와 점심을 하다가, 하나 건너 테이블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있는 젊은 군인 한 사람을 보았다. 육군 중사 계급장을 달았는데, 현역인지, 예비군인지 복장을 보아서는 구분이 안 갔다. 우리들 식사가 먼저 끝났길래, 그 군인에게 닥아가서 물어 보았다. “현역 복무입니까, 아니면 예비군입니까?” 그 군인은, 왜 묻느냔 질문도 없이 금방 대답했다: “州 방위군(New Jersey National Guard)인데, 곧 쿠웨이트로 떠납니다. 그 곳에 먼저 갔다가 아마 아프가니스탄으로 갈 것 같습니다.” 미국식으로 간단히, “Good Luck! 武運을 빕니다!”라고 인사하고 걸어 나오는데, 갑자기 얼마 전에 읽고 번역했던,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란 글이 생각났다. 한 비행기에 탄 젊은 군인들에게 어떤 여객이 점심 박스를 대접했다는 아름다운 에피소드이다.

나오다가 돌아서서 다시 그에게로 갔다. “내가 당신 점심 값을 내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중국식당 부페 값은 단돈 8불 95전이다. 군인이 금방 대답한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옆으로 지나가던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인 여자아이에게 10불짜리 한 장을 줬다. “이건 이 아저씨 점심 값이다. 이 아저씨한테서 점심 값 받지 말아요.” 군인이 웃으면서 고맙다고 한다. 나도 한 마디 더 했다. “무사히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 군인의 마지막 인사가 내 귀를 찡 울렸다: “우리들 모두의 자유를 위하여 난 그 곳에 갑니다. I go there to keep all of us free.” 주 방위군 일개 병사가, 대통령보다, 국회의원들보다, 대학교수들보다, 신문기자들보다, 나보다, 더 간단하게 꾸밈없이 위대한 한 마디를 한 것이다. 美남북전쟁사를 읽다보면 연방군 병졸들이 쓴 편지와 일기가 많이 인용된 것을 본다.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편지가, 설리반 벌루(Sullivan Ballou)란 연방군 병사가 죽기 직전 자기 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켄 번즈란 다큐멘터리 영화제작가가 만든 “美남북전쟁, The Civil War” 시리즈로 더 유명해진 편지이다.

1861년 7월 14일
워싱턴 디 시에서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라에게:

며칠 안 있으면, 어쩌면 내일이라도 곧 출전할 것 같습니다. 혹시 내가 당신에게 다시 편지를 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당신이 읽으라고 몇 줄 적습니다.

우리가 이번 출동하는 것이 며칠 뿐이고 아무 일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큰 전투가 시작되어 내가 싸우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내가 전장에서 죽어야 한다면, 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난 지금 내가, 위하여 싸우는 대의(大義)에 관해서 의구(疑懼)한다거나, 확신이 없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에 대한 내 용기와 결의도 자신합니다. 난 우리 미국문명이 우리 연방정부의 승패로 갈릴 것을 깊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수난을 겪고 피를 흘리시다 저 세상으로 가신 분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큰 빚을 지고있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빚을 갚고자, 이 정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즐거움을 버릴 수 있다고, 기꺼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안해여, 내가 행복을 포기하면, 당신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 행복 대신에 근심과 걱정만이 당신을 괴롭힐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자신 그 긴 세월, 고아원의 절망 속에서 자랐는데, 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똑같은 절망을 안기려 하다니! – 나의 목적은 동요없이 자랑스럽게, 깃발처럼 저 바람에 휘날리는데, 당신, 아름다운 당신과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나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내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면, 그럼 나는 겁쟁이 비열한 인간이란 말인가?

이 잠잠한 여름 밤, 내 심정을 당신에게 어떻다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내 주위에는 2천명 전우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전우들이 죽기 전 마지막 단 잠을 자고있을 수도 있습니다 … 죽음이 날 바싹 좇아오고 있다는 생각에, 난 지금 하나님과, 우리나라와, 그리고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난 내 가슴 속 깊이 열심히 따지고 또 따져 보았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내가 무얼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닌가? 내 가슴 속 답은 확실했습니다.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 나의 순수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우리 선대들이 지켜준 원칙과 “내가 죽음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명예”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나는 그 召命을 좇아야 한다고.

사라,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 것입니다. 나를 당신에게 묶어놓은 이 단단한 사슬은 하나님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조국에 대한 나의 사랑이 강풍처럼 나에게 불어치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저 戰場으로 이끕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환희의 순간 순간이 나에게 스며듭니다. 내가 그토록 행복할 수 있게 한 당신과 하나님께 그지없이 감사합니다. 그 행복을 포기하고 잊을 수 없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당신과 다시 살고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이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아무리 작은 소원이라도 드릴 수 없는 인간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내 귀에 속삭이는 저 목소리 – 우리 어린 에드가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소리 때문에 – 내가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살아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면, 내 사랑하는 사라,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잊지 마시오. 내가 전장에서 마지막 숨을 쉬면, 난 그 마지막 숨으로 당신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토록 많은 내 잘못들, 나 때문에 당신이 괴로워했던 것을 부디 용서해주오.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생각이 모자랐던지! 내 눈물로 당신의 아픔을 다 씼어줄 수만 있다면! 내가 당신 곁에 있어서 당신과 아이들을 지켜줄 수만 있다면! 그러나 난 그럴 수가 없오. 내가 저 세상에 먼저 간다면, 저 하늘 나라에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오. 당신이 그 연약한 몸으로 이 세상 풍파를 혼자서 이겨내면서,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눈물로 인내할 것을 내가 지켜볼 것이오.

그러나 사랑하는 사라, 만일 죽은 망령(亡靈) 이 땅에 돌아와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보이지 않게 떠돌 수 있다면, 난 항상 당신 곁에 있을 것이오. 환한 대낮이나 한 밤중에도 - 당신이 가장 즐거울 때나, 또는 가장 슬플 때에도 – 언제나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 것이오. 그 때 당신 얼굴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은 내 숨결일 것이고, 당신의 수고한 이마를 시원하게 스치는 바람은 내 영혼이 지나가는 것이오.

사라, 내가 죽었다고 슬퍼하지 마오. 내가 먼저 가서 당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해주오. 우리는 다시 만날테니까.

우리 사내 애들은, 내가 자랐을 때처럼,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모르고 자라겠지. 꼬마 윌리는 너무 어려서 날 기억 못할 것이고, 푸른 눈 에드가는 자란 후, 오래 전 아버지와 놀던 추억이 조금은 나겠지. 사라, 난 당신이 아이들을 잘 키우리라고,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머님과 장모님께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사라, 저 세상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오기를 기다리며, 이제부터 우리 아이들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당신의 설리반

1861년 7월 14일, 이 편지를 쓴 설리반 벌루는 1주일 후 남북전쟁 첫 전투였던 불런 전투에서 7월 21일, 전사했다. 설리반이 쓴 편지는 당시 사라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나, 사라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아들들을 키우고, 1917년, 80세로 생을 마감하고 하늘 나라에 있는 설리반 벌루에게 갔다.

2009년 12월 10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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