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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05, 2006

[링컨을 배우자] 링컨에 대한 오해들

주간조선 창간 38주년 특집기사 - 2006년 10월 23일

[링컨을 배우자] 링컨에 대한 오해들

“링컨이 흑인을 차별하고 독재자였다고?”
링컨은“흑인도 엄연히 독립된 인간이며 백인과는 단지 신분이 다르다”고 주장
나라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잠시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인정했을 뿐

대부분 미국인은 링컨을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가나 링컨을 연구한 사람 중에 링컨을 오해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남북전쟁(The Civil War)’이란 제목의 3부 대작을 출판한 작가 셸비 푸트는 “주(州)의 자주권을 부르짖으며 연방에서 이탈했던 남부연맹에 연방이탈 독립권이 있었다”면서 “남북전쟁은 피할 수 있는 유혈극이었으며, 링컨보다는 남부연맹의 행정수반 제퍼슨 데이비스가 더 비극적·영웅적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다.

링컨은 ‘노예해방에 관심이 없는 인종차별가’라는 일부 비판을 받는다. 링컨이 노예해방에 있어서 점진적이고 순차적인 방법을 선호한 탓으로 보인다. 링컨은 흑인노예를 백인과 같이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그들의 자유와 인권을 주장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노예는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링컨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흑인노예를 정치·사회·문화·경제적으로 백인과 동등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인간으로서는 동등할지 몰라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흑인과 백인은 결코 동등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미국 사회의 현실이었다.

링컨은 그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전면적 노예해방을 서두르지 않았고, 우선 노예제도를 합법화하고 있는 기존의 남부 주에서 다른 주로 노예제도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에 주력했다.

물론 링컨이 노예제도의 변방 확산을 반대한 것은 ‘흑인도 인간’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컨은 “흑인이 인간이라면 그들도 미국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바와 같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자신의 피와 땀을 흘려 거둔 곡식을 자신과 자신의 처자식에게 먹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링컨은 “백인 변호사인 나더러 흑인여자와 결혼하라고 한다면 사회·문화·경제적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분명히 잘라 말했다. 이런 말을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링컨은 독재자’라는 비난도 있다. 링컨 대통령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헌법을 수호했고, 헌법을 살리기 위해서는 독재도 했다. 링컨은 남북전쟁에 돌입하면서 ‘영장 없이 시민을 체포·구금할 수 없다’는 영미 관습법의 기본인 하베아스 코르푸스(인신보호법)를 주저 없이 유보시켰다.

북부에 남은 남부연맹의 간첩들과 이적행위를 하는 반역자들을 잡아 가두지 않고는 전쟁을 치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링컨이 ‘법을 존중한다’는 명분 때문에 메릴랜드주의 연방 이탈을 방관했다면 수도 워싱턴 DC는 반란군에 접수되어 전쟁은 해보지도 않고 남부연맹의 승리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국이 남북 두 개로 나눠졌다면 지금 미국은 최소한 영어권, 프랑스어권, 스페인어권 등 3개의 나라로 갈라졌을 것이다.

링컨은 남북전쟁 때 자원병제를 징병제로 바꾸었다. 당시 대법원장인 로저 B 터니는 이를 위헌(違憲)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링컨이 대법원장의 말만 듣고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에서 북부 연방군은 남부 반란군에 비해서 우위를 지킬 수 없었다.

남신우 재미건축가
뉴욕 링컨그룹 회원
'대통령 링컨’번역자
200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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