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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rch 07, 2007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지난 일요일, 집사람과 함께 동네 영화관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면서 둘이 펑펑 울어댔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윌리엄 윌버포스란 18세기 영국인은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후일 재상이 되는 윌리엄 피트와 평생 친구로 지낼만큼 영국 사회와 정치계에서 상류중 상류에 속했었다. 그런 그가 26살 났을 때 (1785) 어느 날 아프리카 흑인노예들의 참상을 알고 흑인노예의 교역을 반대하는 운동에 뛰어 든다. 그는 흑인노예들을 구하겠다는 집념으로 평생 투쟁하면서 그의 나이 48세 때 (1807) 흑인노예 교역금지법을 영국국회에서 통과시킨다. 흑인노예들도 사람이라고 영국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는데 20년 이상 몸과 마음을 바친 것이다.

필자가 수잔 숄티 여사와 함께 일하는 워싱턴 [북한자유연대]에는 여러 인권운동가들과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그중 [윌버포스 포럼]이란 단체에서 일하는 마리암 벨이란 여자분이 국회관계 섭외 일을 담당하고 있다. 2004년 미연방국회 상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데 큰 공을 세운 분들중 한 분이다. [윌버포스 포럼]은 미국에서 죄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죄수들에게 선교하는 인권단체다.

몇 해전 김문수 지사가 국회의원 시절 워싱턴을 다녀간 일이 있었다. 수잔, 마리암, 필자와 함께 워싱턴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그때 마리암이 자신을 [윌버포스 포럼] 임원으로 소개하자, 김의원은 곧, “영국에서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킨 그 유명한 윌버포스냐?”고 반겼다. 윌버포스가 누군지 몰랐던 필자는 인터넷에서 윌버포스를 검색하여 대충 알아본 적이 있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보다가 끝장에 펑펑 운 것은, 윌버포스의 집념과 끈기에 대한 감격 때문이었고, 윌버포스와 같은 사람이 역사에 있었다는 반가움 때문이었다. 비교하는 것조차 좀 웃기는 일이겠지만, 북한인권 간신히 6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 투정하는 남아무개는 20여년을 싸워서 영국인들을 바꿔놓은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비하면 참으로 한심한 인간이다. 윌버포스와 링컨은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키는데 자신들의 평생과 목숨을 바쳤다. 남아무개란 신참졸병 인권운동가도 북한동포노예들을 구하는데 앞으로 20년이든 30년이든 평생을 바친 후에나야 절망도 하고 투정도 할 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 때 제일 많이 불렀던 노래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라 한다. 링컨과 윌버포스를 따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면서 사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서 싸우는 일은 싸워 볼만한 일이다. 우리가 다 못하면 다음 세대가 해줄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포기할 수는 없다.

2007년 3월 7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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